人文,社會科學/책·BOOK

"재수 없어도 괜찮아… 진짜 공부란 자기 목소리 내는 것"

바람아님 2018. 3. 17. 15:32

(조선일보 2018.03.17 이한수 기자)


'공부의 철학' 쓴 지바 마사야 리쓰메이칸大 교수 인터뷰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76쪽 | 2018.03.15  | 1만5000원


이메일로 보내준 사진을 보니 마치 '아이돌' 같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다.

철학자는 근엄할 것이란 편견을 깨뜨린다.

지바 마사야(千葉雅也·40)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일본 철학계의 신성(新星)으로 불리는 젊은 철학자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3일 그의 글을 통해 현대 철학의 역할을 분석하기도 했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과 고등사범학교를 거쳐 도쿄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공부의 철학(勉强の哲學)'은 현지에서 작년 4월 출간 후 6만부 이상 팔렸다.

'공부'도 골치 아픈데 '철학'을 논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지바 교수는 "공부란 동조(同調)에 서툴러지고 재수 없어지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 누르는 일을 주저하게 하고, 동질적 집단에서 딴소리를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깊이 공부하면 바보처럼 주변에 동조했던 자신이 사라지는 단계를 거쳐 새로운 동조 능력을 갖게 된다.

그때 동조는 '자기 목적적'"이라고 했다. 들뢰즈, 데리다, 라캉처럼 이름만 들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자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본문에는 이들의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술술 읽힌다.

이 젊은 철학자와 이메일을 몇 차례 주고받았다.


―연예인 같은 모습이다. 철학자라고 엄숙할 필요는 없다는 표현인가.

"자연스럽고 편하다. 창조적이려면 편해야 한다.

교수회의 참석 때도 이런 모습이다. 장례식은 예외지만."


―철학자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들뢰즈, 데리다, 라캉 등의 생각을 응용했지만 가능한 한 이름은 드러내지 않았다.

구체적 예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주요 분석어인)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는

일본 젊은이의 대화에서 중요한 말이므로 쉽게 접근할 것이라 생각해서 썼다."


지바 마사야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깊이 공부하면 바보처럼 주변에 동조했던 자신이 사라진다”고 했다.
지바 마사야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깊이 공부하면 바보처럼 주변에 동조했던 자신이 사라진다”고 했다.

 /지바 마사야 교수 제공


일본의 풍자 만담인 '만자이(漫才)'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역할을 '츳코미',

바보 같은 행위로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보케'라 한다.

그는 공부를 깊이 하면 비판 능력인 '츳코미'가 커지고, 본래 목적과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는 '보케'가 강해진다고 했다.


―'공부란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썼다.

대학 합격이나 승진을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란 말인가.

"폭넓게 독서하고, 깊이 생각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시험 합격으로 연결된다.

그냥 머리에 집어넣는 지식으로 합격만을 목표로 하면 합격해도 공부한 것을 바로 잊어버린다.

시간 여유를 두고 깊이 사고하는 훈련을 해야 그 후에도 지식을 유지할 수 있다."


―아사히신문 기고(3월 13일자)에서 이제 일본 사회는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썼다.

"일본에선 꽤 오래전부터 철학이 붐을 이루고 있다.

젊은 연구자가 학문적 수준과 일상의 구체성을 겸비해 책을 쓰는 일이 가능하게 된 이유다.

현대 사회는 과학이 만능인 것처럼 말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과학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종교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은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과학이나 종교가 아닌 다른 '진리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는데 철학은 그 후보의 하나다."


―독자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뭘까.

"주변의 동조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은 향락'을 즐기는 소수를 긍정한다.

획일적 행동이 강제되는 사회에서 '특이한 존재'로 있고 싶은 이들을 격려한 때문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지금 세계는 속도와 효율을 강조한다. 철학은 그런 흐름에 저항하고 사물을 근본부터 생각한다.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깊이 생각하면 오래된 문제다. AI(인공지능) 때문에 일을 빼앗길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 문제를 고민하려면 지능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눈앞의 이해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차분하게 생각하려면 철학을 배워야 한다."


지바 교수는 "앞으로 문학과 음악을 포함해 '제작(制作)의 철학'이란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AI 문제도 포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