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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책] "의자에 앉기만 해야 하나요?"… 디자인으로 다시 보는 세상

바람아님 2018. 3. 23. 06:07

(조선일보 2018.03.23 김경은 기자)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

모두를 위한 유윙펜(U Wing Pen). ▲ 모두를 위한 유윙펜(U Wing Pen). /창비


"이거 디자인 좋네!" "저 디자인은 별로예요."

뭔가를 보고 이렇게 툭 내뱉어본 적 있나요?

물건을 고를 때 특히 자주 하는 말이죠. 그런데 '디자인'이 뭘까요?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남석·이규리·이규린이 쓰고 김정윤이 그린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창비)는

사람을 돕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디자인의 세계를 파고들어요.


일본 디자이너 나카가와 사토시가 만든 유윙펜(U Wing Pen)은 펜 중간에

커다란 고리가 있어요. 이 고리 덕분에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상관없이

펜을 쓸 수 있어요. 손이 불편한 사람은 발가락 사이에 끼워서 쓰고,

손발 모두 불편한 사람은 입에 물고 쓸 수 있죠.


나카가와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디자인은 차별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만을 위하는 디자인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 짓는 거라 여겼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을 연구했어요.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건 디자이너에게 남다른 철학이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공감(共感)이죠. 키 작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고, 휠체어 탄 장애인을 가로막는 문턱을 눈여겨보고,

버스나 지하철에 탄 임신부의 불편을 알아채는 식으로 여러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거예요. 그림이 도드라지게

인쇄돼 있어 시각 장애를 가진 아동이 손으로 만져보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점자 그림책처럼 말이에요.


사람을 연구하는 '인간 공학 디자인'도 있어요. 인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편안하고 효율적인 제품과 서비스,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컴퓨터 키보드는 대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에요.

그런데 왼손으로 치는 부분의 자판과 오른손으로 치는 부분의 자판이 분리되는 키보드도 있죠.

가운데가 둥글게 튀어나온 제품도 있고요. 오랫동안 키보드를 쳐도 손과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만든 '스펀 의자'는 앉으면 의자가 휙 기울면서 빙그르르 돌지만 쓰러지지는 않아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만들어졌으니까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조 세레티가 만든 커다란 초록색 의자 '프라톤'은 정원 잔디를 확대해 놓은 것처럼 생겼어요.

털썩 몸을 맡기면 거대한 잔디밭에 누워 있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라고 말하는 거예요.

의자에 앉기만 해야 하나요? 누울 수도, 엎드릴 수도 있죠.


혁신적인 디자인은 관찰과 조사, 끈질긴 질문, 토론에서 탄생해요.

색다른 디자인은 더 기발한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지요.

디자이너가 꿈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면 세상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
글 이남석, 이규리, 이규린|그림 김정윤

|창비 |2018.03.09 |페이지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