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3.24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해마다 100권 이상 7000권 독파… 신문·잡지도 매일 두 시간 읽어
책은 살맛 나는 세상으로의 여행… 자기 계발은 독서의 결과일 뿐
스티븐 호킹·파울루 코엘류 등 유명 작가들에 신랄한 毒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조 퀴넌 지음|이세진 옮김|위즈덤하우스|384쪽|1만4800원
한국인의 연간 독서량이 8권이라는 통계는 뜻밖이다. 우리 국민이 45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는 얘기 아닌가. 한국인 열에 넷은 1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이런 수치가 나온다. 책은 읽는 사람만 읽고, 그들 대부분이 책벌레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절반인 4권이다. 열에 여덟은 책과 담쌓고 살지만 나머지 두 명이 엄청나게 읽어 평균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조 퀴넌은“속독을 하지 않는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 퀴넌은“속독을 하지 않는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위즈덤하우스
출판 칼럼니스트인 저자 퀴넌(68)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1년에 적어도 100권을 읽고
탄력 받으면 그 두 배쯤 독파한다.
태어나 지금까지 6000~7000권을 읽었고
지금도 매일 두 시간 넘게 책을 파고든다.
따로 두 시간은 신문과 잡지에 할애한다.
자기 계발을 위해? 그건 독서의 결과일 순
있어도 목적은 아니다. 극빈자용 임대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우울한 현실을 떠나
살맛 나는 세상으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이 겨냥한 독자는 '독서라는 은밀한 취미를
공유하는 책벌레들'임이 명백하다. 독서욕을
자극하는 책 리스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책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런데 너는?" 하며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독서론에
죽이 맞을 수도 있고 반론을 펴고 싶은 충동이
일 수도 있다. 독서의 고수들도 책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니까.
'맥베스'에서 '기억할 만한 문장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기 시작했다가는 한 권을 다 형광펜으로
칠하고 말 것'이란 재치 만점 문장에 미소 짓다가 문득, 숨이 멎을 만큼 이 멋진 0작품에 빠져들었던 대학 시절의 옛 기억이
되살아날지 모른다.
파울루 코엘류를 느끼한 설탕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연금술사'류의 '지루해 빠진 키치(kitsch·저급한)
소설'이란 표현에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저자는 최근 타계한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
'800만부 팔렸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800명도 안 된다'는 독설을 날리고, '기업가·정치인의 책은 대가를 받지 않고는
절대 안 읽는다'고 단언하지만 "뭘, 이렇게까지…"라며 혀를 찰 수도 있다.
새커리의 장편 '허영의 시장'을 읽다가 만 데 대한 죄책감을 23년이나 안고 살았던 사연, '내가 가진 책은 다 읽자'는
목표를 세웠다가 실패했지만 '두 번 읽은 모든 책을 한 번 더 읽자'는 멋지게 성공했고 재미도 있었다는 말은
이 엄청난 독서 고수도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는 나중에 와야' 하고, '단지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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