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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까발린 사진가의 렌즈

바람아님 2018. 3. 25. 18:48

(조선일보 2018.03.24 곽아람 기자)


'미국 사진과 아메리칸 드림''미국 사진과 아메리칸 드림'
미국 사진과 아메리칸 드림|제임스 귀몬드 지음|김성민 옮김|

눈빛|2018.03.16416쪽|3만원


'아메리칸 드림'이란 무지개 아래 요정이 숨겨놓은 황금 항아리가 묻혀 있다는 서구 신화 같은 환상이다.

미국 라이더 대학 명예교수로 미국 문학 및 사진을 연구해 온 저자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걷어내고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어두운 실상을 직시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소개한다.


스위스계 유태인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의 '전차, 뉴올리언스'(1956)는 미국의 불편한 민낯을

까발린 대표적인 사진으로 꼽힌다.

1958년 파리에서 출간된 사진집 '미국인'에 실렸을 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차 안 흑인과 백인은 다른 칸에 타고 있다.

전차 앞쪽의 세 개의 좌석은 모두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고, 뒤쪽의 두 개의 창문으로 흑인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흑백분리정책이 실시되고 있었던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상식적인 풍경이었다.

사진집에서 이 사진은 커다란 성조기가 걸린 뉴욕주 한 마을의 독립기념일 풍경 다음에 실렸다.

시퀀스(sequence·배열)를 중시한 프랭크는 성조기 사진으로 '미국의 이상'을 제시한 후 이어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사진집을 구성했다.


1950년대 중반 '라이프'와 '루크' 같은 미국 사진 잡지 지면은 백인 중산층 가족의 풍요로운 생활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어린 딸은 인형같이, 아들은 카우보이처럼 행동하고 치어리더, 미식축구 선수 등을 꿈꾸며 청소년기를 보낸 뒤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해 교외에 집을 사서 귀여운 아이들을 많이 낳고 사는 것이다.

프랭크를 비롯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전차, 뉴올리언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전차, 뉴올리언스’. 1950년대 미국 흑백분리정책의 현실을 보여준다. /눈빛


윌리엄 클라인은 1956년 '뉴욕에서의 생활은 즐겁고, 당신에게도 유익하다'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제목과는 달리 뉴욕의 추한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사진에 등장하는 뉴욕 중산층 사람들은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얼굴은 무겁고 음울하다. 다이앤 아버스는 유태계 거인증 환자처럼 몸과 마음이 병든 미국인을 악마적으로 표현했다.


국수주의자들은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비난했다. 로버트 프랭크는 "편견으로 눈이 멀어 자신이 찾고자 하는 비참한

세계에 안주하려는 거짓말쟁이"라고 비판받았다. 아버스의 작품이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미술관 직원들은

관람객들이 사진에 뱉은 침을 닦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해야만 했다.


20세기 초 사진가 루이스 하인은 이민자 가정의 어린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가혹한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넝마주이에서 부자로'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적 속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거리의 구두닦이, 신문팔이 소년 등은 성공의 기술을 배우는 준자본가였다. 1906년 전국아동노동법안이 상정되자

일부 언론은 "어린 노동자들이 자본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인이 1913년 텍사스주 와코에서 촬영한 전신회사 배달부 소년의 사진은 '거리의 소년'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사진 속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전거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하인은 "이 15세 소년은 홍등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적었다.

SNS에 보정을 거듭한 '예쁘장한 사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길 기다리고 있는 이 넘쳐나는 이미지의 시대에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로버트 프랭크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가는 탐정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