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클레이든 영국 킹스턴 과학기술대학 교수는 자신의 논문 ‘영국 자동차 산업의 노동조합, 근로자, 그리고 산업혁명’에서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 자동차 산업이 1970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이유를 이렇게 세 가지로 꼽았다. 고비용·저효율 산업구조를 대표하는 용어인 ‘영국병(British Disease)’이 원인이었단 얘기다.
세계 최고였던 영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린 세 가지 원인은 놀랍게도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재현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연구개발(R&D) 집약도(매출액 대비 R&D 비용)는 고작 2.8% 수준이다. 6개국 집약도를 조사한 맹지은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독일(6.2%) 등 6개 경쟁국 중 한국이 꼴찌”라고 밝혔다.
정부의 탁상행정도 약 50년 전과 판박이다.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친환경차를 보급하겠다며 보조금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핵심 부품의 90%는 수입하고 있다. 단체협약 규정은 후진적이고, 미래 자동차 산업을 육성할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부재하다. 이러다간 ‘한국병(Korean Disease)’이라는 용어가 영국병을 대체하는 용어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한국이 반세기 전으로 후진하는 동안 영국은 영국병을 말끔히 씻어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자리 수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차 기술을 확보하는데 전력했다.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규제를 풀었더니 닛산·도요타·혼다 자동차 공장이 몰려왔다. 24개 영국 완성차 공장 노조는 10년 동안 딱 하루만 파업하며 동참했다. 이제 현대차 근로자가 자동차 1대를 만들 때, 영국 복스홀자동차는 4대를 만든다.
산업·기술·노동 분야에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자문하며 영국병을 치료하는데 앞장섰던 쿠마르 바타카리아 경(卿)은 “내연기관 생산량은 무의미하다”며 “미래차 기술이 일자리와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병을 극복했던 경험담을 새겨듣지 않는다면, GM 군산공장 폐쇄는 그저 비극의 서막일 뿐이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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