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4.02. 01:39
정부·시장 결합한 '중국 속도'로
2049년 선진국 진입 목표 세워
한국, 혁신 없인 중국에 뒤처져
강력한 권력 기반 속에서 중국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선 불확실성이 커진 거친 환경 속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고자 했다. 2049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즉 선진국에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상한 힘을 바탕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역(逆)세계화에 맞서 중화 국제화를 선언했고 미국의 가치가 보편성을 잃고 있는 공간을 파고들어 중국 방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싱크탱크의 핵심이자 시 주석의 심복인 왕후닝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진시킨 것도 ‘생각의 힘’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 개조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 기구를 크게 개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진핑 장기 집권 시대는 새로운 도전이다. 벌써 미·중 관계가 출렁이고 있다.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고 미·중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에 500억 달러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던졌다. 중국도 비록 저강도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았지만 “참깨 줍기 위해 수박을 잃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한·중 관계는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았다. 여기에 시 주석의 외교 정책 장악력이 높아지면서 대(對)한반도 정책에서도 매몰 비용을 줄이고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정책 유사성이 높기 때문에 협력 공간도 넓어졌다. 그러나 남북, 북·미 관계의 발전이 그대로 한·중 관계나 북·중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단계와는 달리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단계에서는 정전협정의 당사국으로서 중국은 적극적 역할을 찾을 것이고, 필요하면 우리에게 사안별로 까다로운 선택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상태로 가면 한국 경제가 10년 내 중국의 하청기지로 전락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의 주력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은 유능한 정부와 효율적 시장을 결합하면서 미래 산업을 장기 기획하며 ‘중국 속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이미 5G와 드론, 전략 물자 등은 제4차 산업혁명과 긴밀하게 결합했다. 우리가 시장의 혁신에만 의존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우선 한반도 문제가 미·중 관계의 종속 변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렵게 만든 기회의 창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저절로 찾아 든 해방과 민주주의, 평화는 없다. 한반도 문제와 남북 관계에 대한 전략적 지렛대를 잃으면 누구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봄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돌파가 국제사회를 향한 인정(recognition) 투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우리의 자산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장기 기획, 리더십, 유능한 정부, 혁신적 시장, 국민 에너지를 결집해야 한다. 중국을 우회할 수 없다면 중국에서 혁신하고 살아남는 생존 방정식을 다시 풀어야 한다. 앞차를 따라가는 안전 운행만으로는 이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 곡선 주로를 활용하고 차선을 변경하는 대담한 발상을 더는 미루기 어렵게 됐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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