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오강돈의 중국마케팅(42) 중국과 러시아 <1>

바람아님 2018. 4. 4. 08:15

조선비즈 2018.04.03. 10:01


공통점과 남다른 인연 많은 두 나라우리 젊은이들, 중국·러시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 넓혀야

공교롭게 시기도 비슷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주석직 최대 한번 연임 즉 최대 10년 재임이라는 제한을 없애 버렸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공명 선거에 대한 논란을 뒤로 하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대통령과 실권 총리를 합쳐 24년간 권좌에 앉게 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이다. 21세기의 황제와 차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적으로 현재의 두 나라는 공산주의적 요소를 대부분 버리고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시절 주도 세력들이 시장경제의 출발선상에서 유리한 자원을 선점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냉전 시기 소련 그리고 중공과 교역을 포함한 그 어떤 교류도 대놓고 할 수가 없었다. 각각 철의 장막, 죽의 장막 건너편에 있던 두나라와 한국은 1990년 한러수교, 1992년 한중수교를 함으로써 비로소 상대방을 ‘시장과 소비자’로도 인식하게 되었다.


두 나라는 정치 군사적으로, 분단된 남북한을 둘러싼 4강의 일원으로, 6자회담의 당사국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의 끝 무렵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제각기 한반도를 자기집 안마당처럼 여기며 한반도의 이권을 놓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벌여 다투었다.

한반도, 중국, 러시아가 만나는 세모퉁이 도시 훈춘(浑春)의 국제 버스 터미널에 붙어 있는 지도. 훈춘 인근 지역만 크게 확대하여 부각하여 놓았다. 노란색 원이 훈춘.

그렇게 어려웠던 때,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러시아의 연해주와 사할린, 중국의 간도로 건너간 한반도 사람들도 매우 많다. 그 후손은 지금 고려인,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는 한국 라면을 먹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다. 러시아는 한국이 육로 철도로 러시아를 통과하면 유라시아 대륙에 땅으로 연결된 일원이 된다고 꽤 오래 전부터 제안하고 있다. 한편 중국 시장에 한국 기업이 진출하고, 한중 양국이 문화, 교육등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교류를 하고 있음은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한반도와 러시아, 중국이 만나는 세 모퉁이의 도시 훈춘(浑春)에 가면 한국어, 러시아어, 중국어가 모두 통하고 세가지 언어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 산다. 한반도는 정치, 군사적으로 쉼 없이 요동치고 있다. 변화가 많다. 역사의 반복도 있다. 변화의 방향이 어디가 될는지 알기 쉽지 않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다소 목소리를 낼 정도가 된 것이 다행이다. 부지런하고 활발한 한국인의 디엔에이가 밑바탕이 되었다. 어쨌든 한국에게 중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중국은 정치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상대방이자 이웃 나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통점이 많다. 또 두 나라 사이에는 남다른 인연도 많이 있다. 지구상에 마르크스주의를 실제 국가체제로 구현했던 러시아와 중국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중국 서북쪽은 구소련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국경을 함께 이룬다.

훈춘 국제버스부, 浑春国际客运站, АВТОВОКЗАЛ ХУНЬЧНЬ 등 세개 언어 간판의 국제버스터미널.

청나라 때에는 연해주가 청나라 땅이었다. 우수리(乌苏里)강 동쪽이 연해주이다. 우수리강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를 북쪽으로 흘러 하바로프스크에서 흑룡강과 만난다. 연해주에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의 뜻은 ‘동쪽을 소유하라’, ‘동쪽을 지배하라’ 정도이다. 중국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푸라디워스퉈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해삼외(海参崴)라는 지명의 청나라 땅이었다.


1600년대 차르 러시아는 동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여 연해주에 다다라 청나라 강희제와 얼지 않는 부동항을 다툰 바,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은 연해주를 청나라 땅으로 양국의 국경을 획정하였다. 1840년 영국과 청나라 간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대패하면서 국운도 기울고, 이틈에 러시아는 1858년 청나라와 우수리강 동쪽의 연해주를 두나라가 공동 관할한다는 아이훈 조약을 맺게 되고, 연이어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연해주를 차지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松花江)은 북으로 흘러 동강(同江)에서 흑룡강과 만난다. 흑룡강은 흑하라고 하기도 하고 몽골인들도 검은강이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아무르(Амур)강이라고 부른다. 흑룡강은 몽골 동쪽에서 발원해서 동진하여 만주와 시베리아 사이의 중러 국경을 이루다가 동강에서 송화강과 합류하고, 또 다시 하바로프스크에서 우수리강과 합쳐진 후로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사할린섬의 북단 오호츠크해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에 부여, 고구려, 발해의 활동 무대가 들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는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검은색 선이 흑룡강, 녹색 선이 송화강, 붉은색 선이 우수리강이다.

더군다나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중국의 생산과 시장 여건이 나빠지자 많은 한국 경제인들이 베트남을 주목했던 것처럼, 이제는 개별 국가에 특정하지 않는 글로벌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엮어서 관심 가져 볼 만하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GM, CJ 국내마케팅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회사, IT투자회사 경영의 경력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 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