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2018.04.12. 17:1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의 권력 강화는 개혁·개방(시장경제)의 후퇴로 이어질 것인가? 일단 분명한 것은 중국 최고 지도부를 반(反)시장주의자로 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개적 발언과 일부 정책(공급 측면 구조개혁)을 감안하면, 시진핑 주석은 오히려 충실한 시장주의자에 가깝다. 2013년 국가주석에 처음 취임할 때나 최근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그는 일관되게 “시장에 기반한 자원 배분을 확립하겠다”라고 말해왔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이끌어온 경제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07년 원자바오 당시 총리는 중국 경제를 ‘4불(不) 경제’로 표현한 바 있다.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며 ‘부’조화적이라서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빈부격차 확대와 환경오염, 부정부패 등이 심각했다. 2010년대 초반 들어서는 성장률마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연설에서 올해의 목표 성장률을 6.5%로 정했다(지난해는 6.7%). 그러나 중국 지도부 내에서 실업률 급증 및 사회적 소요를 막기 위해 설정한 성장률은 무려 8%다. 이에 더해 그동안 민간과 정부가 쌓은 총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60%에 달하면서 금융위기 경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국가(공산당)의 지나친 경제 개입’이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중국 내외에서 공통적으로 평가한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개별 민간 주체들이 각자 자기 책임으로 ‘이후 유망할 것으로 보이는’ 상품·서비스 부문을 선택해서 투자한다. 은행 역시 대출 희망 기업의 사업계획을 나름 엄밀하게 심사한 다음에야 돈을 빌려준다. 시장경제에서는 원칙적으로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자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투자 규모를 확대(성장률을 높이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아주 쉽게 투자를 늘릴 수 있다. 국영기업에 생산을 늘리라고 명령하면 된다. 이와 함께 국책은행에게 돈을 빌려주라고 요청한다. 국영기업과 은행의 경영진에는 당연히 공산당 조직이 들어가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성)들은 상부에 보고할 도시 개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지역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사업을 확장하도록 권고한다. 대출 보증도 서준다. 결과는 높은 경제성장률, 비대한 부채, 부정부패다.
국영기업에 제일 중요한 일은 투자와 생산 규모를 늘려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장 수요나 기대 수익률을 참조하기보다 당의 명령을 수행해야 경영진의 지위를 보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석탄·철강 부문의 국영기업들이 수요와 관계없이 마구 생산량을 늘리다 보니 상품 가격이 폭락하는 등 시장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중국의 철강 제조량은 글로벌 전체의 생산에서 절반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아온 국영 부문의 ‘과잉생산’ 문제다.
국책은행은 총대출 가운데 70~80%를 국영기업에 제공한다. 국영기업들은 과잉생산으로 적정 수준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 상환에 차질을 빚게 된다. 부채 규모가 점점 더 늘어나는 이유다. 지방정부를 배경으로 하는 눈먼 투자는 부동산 거품을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려놓았다.
‘반부패 투쟁’은 경제구조 조정의 성격도
미국 인터넷 매체인 쿼츠(Quartz)가 지난 1월18일 미국외교관계협의회(CFR)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국영기업은 대출 자금을 독식하는 반면 그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1~2016년, 민간기업 부문의 이윤이 18% 증가한 반면 국영 부문의 그것은 33%나 떨어졌다. 중국의 민간기업 부문은 이미 GDP의 70%, 고용의 85%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이니 공산당 수뇌부도 국영기업의 특권을 해체해서 ‘시장에 기반한 자원 배분’을 강화해야 경제 전체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인정한다.
실제로 시진핑은 2013년 주석에 취임한 이후 시장주의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주도한 ‘반부패 투쟁’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과잉생산, 비대한 부채 규모, 부동산 거품 등 경제적 폐해의 배경에 있는 ‘엘리트들의 커넥션(국영기업-국책은행-지방정부)’을 공격하는 경제구조 조정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시진핑 주석이 2016년 초에 제기한 ‘공급 측면 구조 개혁’은 한때 굉장히 급진적인 ‘친시장 정책’으로 간주되었다. <뉴욕타임스>가 “마르크스나 마오쩌둥보다 레이건과 대처를 연상케 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2016년 3월3일자). 문자 그대로 ‘공급 측면(공급의 주체)’인 기업 부문의 구조를 개혁하자는 이야기인데,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는 석탄·강철 부문 등에서 과잉생산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되었다. 국영 부문에 대한 긴축정책이다. 구체적으로는 국영기업에 대한 대출과 보조금을 줄이거나 끊고 일부 업체를 폐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채를 줄이고, 경제 전반의 수익성을 높이며(국책은행이 민간기업에 대출할 수 있게 되므로), 국유 부문에 웅거한 부정부패 집단까지 척결할 수 있다.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산업정책의 총지휘부였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를 대폭 축소한 명분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자원 배분을 활성화해서 중국 경제를 현대화”한다는 것이었다.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렸던 류허를 경제담당 부총리로 발탁한 것도 주석의 복심을 암시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류허는 ‘공급 측면 구조개혁’론의 창안자로 이번 부총리 임명은 ‘부채 폭탄’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류허는 2016년 5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중국의 고성장은 끝났다”라는 내용의 익명 기고문으로 당시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인 장가오리의 ‘고성장론’을 질타한 바 있다. 장가오리가 ‘올해 경제성장 전망이 좋다’며 더 많은 자금 공급과 투자를 강조한 것에 대해, ‘고성장은 끝났으므로 투자와 부채를 줄이는 긴축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반박한 셈이다. 당시 류허는 공산당 산하 최고 경제정책 결정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의 주임이었다. 류허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에 비판적이었으며, 시장친화적 개혁과 자유무역의 옹호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실천’이 친시장적인 언행과 반대로 치달아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말, 2017년의 세계를 정리하는 특집호에서 “지난 3년(2015~2017년) 동안 “시진핑이 경제 영역에서 한 일은 모두 공산당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뿐이었다”라고 혹평했다. 입으로는 시장을 반복하면서 실제로 한 일은 국영기업 내의 공산당 그룹에게 ‘투자 결정에 개입하라’고 권고했으며, 심지어 알리바바·텐센트·웨이보 등의 지분을 확보해서 거대 IT 기업에 대한 통제력 강화까지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당 대회 당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새 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 정책’으로 꼽은 첫 번째 원칙은 “당이 모든 부문을 주도한다”였다. 공산당이 시장과 기업을 통제하겠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당 대회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국영기업들을 더욱 강하고 더욱 좋고 더 크게 만들겠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나온 공산당의 경제 운영 청사진은 ‘합리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신용 팽창’을 요구했다. 목표 성장률인 6.5%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부채를 늘려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산당으로서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
이렇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말과 실천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중국 지도부가 ‘공산당으로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자가당착적 처지에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당초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으로 출범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수익성 중시’ 따위 냄새만 풍겨도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자’로 몰려 숙청당했다. 덩샤오핑은 이런 마오쩌둥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동시에 시장 시스템을 급속히 도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었다.
이런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산당의 정책 슬로건이 있다. 바로 1987년 자오쯔양 공산당 총서기가 제13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덩샤오핑의 동의를 얻어 제기한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이다. 자오쯔양은 중국이 이미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생산력이 지나치게 낙후되어 있는 ‘초급 단계’라고 주장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받는’ 사회주의 고급 단계 혹은 공산주의로 나아가려면, 상당히 긴 세월 동안 시장경제로 생산력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고급 단계’는 언제쯤 도래하는가? 자오쯔양에 따르면 최소한 100년 뒤다.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 주창자들은 자신의 이론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100년 뒤에는 모두 ‘마르크스를 만나고 있을 것(공산당 지도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빗대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경제 시스템의 중심을 ‘계획에서 시장으로’ 옮기겠다는 이야기를 사회주의 문헌의 용어들로 교묘하지만 엉성하게 포장한 것이다. 문자로 표현된 공산당의 노선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장 개혁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이에 따라 공산당의 영향력까지 줄일 것이다.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대출을 줄이고 일부 업체의 문까지 닫으면 단기적으로 수백만명 규모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시진핑 주석의 ‘1인 독재’ 체제는 중국의 장기적 발전을 염두에 두고 친시장 개혁에 저항할 엘리트와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장치로 준비되었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에 대해 ‘공산당이 중국의 지배자로 살아남기 위한 심사숙고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선의의 독재’라는 호의적 평가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정치적 독재로 중국을 선진화된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발전시킨다는 프로젝트가 현실화할 수 있을까?
19세기를 살았던 카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그 붕괴로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공산당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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