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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名문장]두 번은 없다!

바람아님 2018. 5. 1. 08:35
동아일보 2018.04.30. 03:02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유명한 시구(詩句)이다. 단순하고 ‘위대한 평이성’이 주는 이 한 줄의 시구를 속으로 가만히 읊조려보면 그 외 모든 언어는 잠시 빛을 잃게 된다.

문정희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1996년 스웨덴 한림원은 폴란드 크라쿠프에 사는 국제 시단에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부끄러움 많고 조용한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이런 말을 했다.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심보르스카는 지극히 쉬운 일상적인 언어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비범한 시를 썼다. 삶이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해야 하나? 인생의 유일성(唯一性)과 유한성(有限性)을 두고 쓸데없이 길고 어려운 설교를 해야 하나?


언젠가 그녀가 평생을 산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 간 적이 있다. 독일군의 침공, 유대인 학살, 공산정권과 강제 이주 등 정치적 격동기를 치른 크라쿠프는 유난히 시인이 많은 문학적인 도시였다. 비극과 수난과 폭력을 거치면서 삶을 깊이 응시하고 그 속에 잠재한 욕망과 잔인함을 언어로 쓴 시인들이 그곳에서 태어나고 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이 시의 끝부분에 나오는 “투명한 물방울”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똑같은 물방울은 단 한 개도 없다. 인간은 철저히 독자적이며 부서지기 쉬워 더욱 존귀한 존재이다. 역사의 수난을 절규와 적대와 한풀이로 소비해 버리지 않고 아름다운 시로 승화한 심보르스카의 위대한 시구! 두 번은 없다! 는 나에게 속삭인다. 어서 일어나라! 단 한 번뿐인 생을 온몸으로 사랑하라!


문정희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두번은없다          

                          -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 2012, 폴란드, 1996노벨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