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강천석 칼럼] 保守가 지붕 무너져도 솟아날 길

바람아님 2018. 5. 12. 14:00

조선일보 2018.05.11. 23:14

 

美·北 담판 결과 위에 국가 생존 전략 제시해야
국민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야 活路 열려
강천석 논설고문


6·13 지방선거 결과는 보나 마나다. 더불어민주당의 싹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를 딱 한 달 앞둔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최고 86%를 기록했다. 취임 당시(84%)보다 더 높다. '대통령 우산' 속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55%가 나왔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4당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의 2배다.


선거 전날 12일에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3월부터 이어져 온 북핵 드라마의 정점(頂點)을 찍는 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억류 미국인 석방이라는 선물을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생큐(Thank you)' '나이스(nice)'라는 단어로 감사를 표시했다. 오가는 말에서는 미·북 간 중대 거래(去來)가 익어가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代案)'을 제시한 데 대해 사의를 표한다'(김정은) '우리가 한반도 전체(entire peninsula)를 비핵화할 때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이뤄질 것'(트럼프). 트럼프의 표현도 지금까지의 '북한 비핵화'에서 김정은식 용어(用語)인 '한반도 비핵화'로 옷을 갈아입었다.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변화다.


모든 거래의 기본 원칙은 등가(等價) 교환이다. 김정은이 확실히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는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북(對北) 제재 완화·경제 지원과 국제 경제 기구 참여 허용·미·북 수교(修交)를 비롯한 북한 체제 보장 방안·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축소·한·미 연합훈련 축소, 주한 미군 감축 등 모든 메뉴가 정상회담과 후속 회담 탁자에 오른다고 봐야 한다. 이들 메뉴는 트럼프식 '신속한 일괄 타결'과 김정은이 희망하는 '단계적 동시 타결' 방식을 혼합한 조리법(調理法)으로 굽거나 익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 코스 요리가 자신이 재선에 도전하는 2020년 11월 이전에 제공된다는 시한(時限)만 명시되면 조리법의 배합(配合) 비율에는 융통성을 보일 공산이 크다.


한국 유권자들은 비핵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북소리의 여운(餘韻)이 이어지는 가운데 투표장으로 향한다. 정권이 장악한 또는 정권과 공동보조를 취해온 대부분 언론은 지면(紙面)과 전파를 축하 폭죽(爆竹)으로 채울 것이다. 대통령의 순간 지지도가 90%대로 치솟을지도 모른다. 보수 정당 후보들은 일기예보를 접하고도 속수무책으로 우박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박을 버텨내고 매달려 있을 이파리가 과연 몇 잎이나 되겠는가. 전망은 암담(暗澹)하다. 보수 단일화를 외쳐봐야 목만 쉰다.


한국 보수(保守)는 2020년 총선·2022년 대선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대통령의 고공(高空) 지지율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은 남북 관계 변화다. 선제공격·예방전쟁이란 살벌한 단어들이 오가는 전쟁 분위기에서 벗어난 듯한 일시적 안도감(安堵感)이 불러온 축복 비슷하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전쟁 승리 두 달 후 선거에서 졌다. 1차 이라크 전쟁 승리로 지지율이 89%로 치솟았던 아버지 부시도 재선에 실패했다. 선거정치에선 평화도 승리만큼 덧없는 물거품이다.


앞으로 날아들 엄청난 청구서(請求書)보다 심각한 일은 한·미 동맹의 성격 변화 과정에서 국가의 생존 전략을 확보하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컨트롤하려면 달라진 상황을 부분적으로 수용(受容)해야 한다. 브란트 총리의 동방(東方) 정책을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그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적 독일 통일의 길을 닦았던 헬무트 콜 총리의 비전과 전략을 참고할 일이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100원에 사들여 80원에 파는 기업은 없다.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선 80원의 세금을 걷어 100원어치 복지를 베풀겠다는 정치인이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과는 정치인 대신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경제와 담쌓은 사람도 일거리가 늘어야 일자리가 는다는 원리는 알고 있다. 이 정부는 거꾸로 간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정당은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보수의 활로(活路) 모색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