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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평화幻想 심고 유엔司 흔들 종전선언/[권대열 칼럼] 終戰 선언?

바람아님 2018. 5. 31. 13:23

<포럼>평화幻想 심고 유엔司 흔들 종전선언

 문화일보 2018.05.30. 12:30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언질 없이 미·북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것은 일종의 기만전술로 봐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부재(不在)는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의 신념에 찬 증언뿐 아니라, 미국 전문가 30명의 일치된 견해(VOA)에서도 여실히 입증된다.


미국은 현재 ‘완전한 비핵화’(CVID)를 대북 협상의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북한의 완강한 거부로 그 목표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많은 직접 대화를 했음에도, 북한이 과연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CVID 비핵화를 약속했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아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이제 6·12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 및 성패 여부는 판문점에서 진행 중인 실무협상 결과에 달렸다. 금명간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핵심은 북한이 미국의 CVID 목표를 어느 범위까지 수용하고 얼마나 신속히 이행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비핵화 과정을 어떻게 검증할지로 압축된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체제보장·적대정책 중단’의 구체 조치로 미국이 북한에 어떤 보상을 할지도 지대한 관심사다. 그동안 평화·화해 분위기를 구실 삼아 우리 내부에서조차 한·미 훈련의 축소·중단이 거론돼 온 가운데, 어제 북한 노동신문은 돌연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의 중단을 요구했다. 한·미 훈련을 “이해한다”고 한 말이 거짓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북한의 예측 불가한 벼랑끝 협상 전술을 고려할 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북 핵 협상 과정에서 기만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엄습하고 있다. 북한 권력의 실세이며 대남전략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이 오늘 전격 방미(訪美)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가질 최종 담판을 주목하는 배경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 정도에 미·북이 합의하고, 북한에 한·미 훈련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위협하는 핵 탑재 스커드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 기타 북한의 가공할 실질적 무력은 온존(溫存)하게 된다.


북한과 협상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탱하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 그리고 현행 한·미 연합훈련 체계를 거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특히, 비핵화 협상이 성립되기도 전에 문재인 정부가 종전(終戰)선언을 거론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종전선언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 정치적 행위라곤 하나, 종전과 평화 체제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선포하는 행위다. 그만큼 평화협정으로 가는 첩경이다. 섣부른 평화협정 체결은 국가안보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길 경우 미국의 군사 옵션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평화 도래’의 환상(幻想)을 국민 속에 심으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 문제를 표면화시키게 된다. 미국이 이 사안의 논의를 꺼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목적의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을 사형시키는 것이라는 버웰 벨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때다. 문 정부는, 지금은 종전과 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미국 측에 더욱 흔들림 없는 CVID를 주문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한 대로 ‘북(北) 편향’ 중재를 서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대열 칼럼] 終戰 선언?

조선일보 2018.05.30. 03:17


북핵 폐기 前 종전 선언
말로만 하는 선언은 의미 없고 효력 부여하면 북핵 원칙 흔들려
이미 盧 정부 때, 외교장관이 "종이에 꽃 그려놓고 봄 왔다"고
국민에게 '평화 환상'만 줄 수도

권대열 논설위원

정부가 '종전(終戰)선언'을 추진한다는데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말로만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 상황이 끝났다는 공식 발표'라고 들리는데, 또 "그런 건 아니고 정치적 선언"이라고 말한다. 실제 국제법상 전쟁은 말이 아니라 거의 전부 평화협정(또는 조약)으로 끝낸다. 그냥 끝낼 수 있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이 역시 의회 동의나 국제사회 보증 등 법적 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평화협정이다.


그래서 말로만 하는 종전 선언은 전례도 없다고 한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과 똑같은 '종전 선언'을 똑같은 방식으로 추진했다. 당시 외교부가 전 세계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전례가 없다"고 했다. 통상 종전 선언은 평화협정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다. 비교적 최근인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끝에 맺어진 데이턴 평화협정도 맨 앞에 "비극적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영토와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뒤로 본문 11조, 구체적 행동 내용 등을 담은 부속 합의서 12건이 따라붙는다. 그런 구체적 합의 없이 말로 하는 선언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협정과 선언은 동시에 이뤄진다.


"그러면 선언만 분리해서 법적·정치적 약속으로서 의미를 어느 정도 부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렇게 되면 선언이 아니고 일종의 협정이나 조약이 된다. 북한은 "앞으로 핵을 폐기하겠다"고만 했을 뿐인데, 한·미와 국제사회는 '종전과 평화 체제'를 약속해주는 결과다. 북핵 문제의 중대한 원칙을 깨는 것이다.


한·미는 지금까지 '북이 핵을 폐기하고 대남 적화 전략을 포기해야 미·북 수교도 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핵·생화학무기 등을 가진 상태에서 평화 체제로 간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부도 "법적 효력을 갖는 선언을 하자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거다. '정치적으로 선언만 하고 북이 안 지키면 우리도 깨면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다시 '개전(開戰) 선언'을 하나.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그런 선언은 또 뭣 하러 하나.


종전 선언의 이런 논리적·국제법적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 정상회담 때도 이미 제기됐다. 남북 합의문에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고 들어갔다. 그러자 당장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이 "종전을 선언하려면 여러 조치와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핵이 폐기된다면 평화협정 체결, 종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종전이 가능하다'는 말만 부각했다. 지금도 미국 정부 등이 '종전 선언은 좋은 일'이라고 하는 건 북한 비핵화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안 된 상태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당장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부터 생길 수 있다. 남북 교전 상황을 전제로 존재하는 게 유엔사령부이고, NLL은 유엔사가 정한 선(線)이다. 북은 "종전했는데 왜 있느냐. 그 사령부가 그은 NLL도 무효"라고 할 거다. 미군의 북한군 감시와 전시 대비 훈련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주한 미군 철수 요구도 따라붙을 거다. 국제사회가 종전 선언, 즉 평화 선언을 했으니 대북 제재 명분도 약해진다. 북핵 폐기가 끝난 뒤 줄 당근을 입구(入口)에서 주는 셈이다. 실제 평화는 오지 않았는데 국민에게 평화가 왔다는 환상도 줄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벌써 '종전 선언 하면 군대 안 가도 되느냐' '북핵 걱정 안 해도 되느냐'는 말이 넘쳐난다. 송 전 장관은 "밖은 겨울인데 종이에 꽃과 나비 그려놓고 봄이 왔다고 선언하는 모양"이라며 "그런 점 때문에 미국과 중국도 종전 선언부터 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현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추진하려는 걸 보면 다른 고려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이 지지해야 힘도 실린다. 그게 아니라 '평화 체제로 가기 위한 협상 개시 선언' 정도의 뜻이라면 '종전 협상 개시 선언'이라고 해야지 종전 선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일수록 정명(正名)이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