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01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도쿠가와 막부의 5대 쇼군 쓰나요시(綱吉·1646~1709)는 일본인들의 애증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는 유교적 소양이 높은 학문 애호가였다. 유학자들과 경전을 강독하고, 관학 기관인 유시마 성당(湯島聖堂)을
건립하는 한편, 신진 학자를 주위에 두고 문치(文治)를 표방하였다.
그는 일본 사회의 생명 경시와 살벌한 무단(武斷) 풍조에 환멸을 느끼고 유교 이념(또는 불교의 자비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생명 존중을 지향하는 덕치(德治)와 인정(仁政)을 꿈꾸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지도자로 기억되고 만다. 그가 주도한 '생물연민령(生類憐れみ令)' 때문이다.
생물연민령이란 쓰나요시 치세에 발령(發令)된 135건에 이르는 '동물복지법'의 총칭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은 살생 금지다.
개·소·말·새·물고기는 물론 조개·곤충에 이르기까지 갖은 동물의 살생을 금지했다.
사람들은 아무리 배가 곯아도 눈앞에 노니는 짐승을 잡을 수 없었다.
법을 어기는 자는 엄벌로 다스렸다. 개를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규정도 있었다.
법령 중에는 유아를 버리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기아(棄兒)를 금지하거나, 병자 구호(救護)를 의무화하는
인명 중시의 진보적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잡다한 법령이 계속 추가되면서 생명 경시 풍조에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취지는
무색해지고 사람들의 고통과 불편만 가중됐다. 쓰나요시는 이 법이 100년을 가기를 바란다고 유언하였지만,
후대 쇼군 이에노부(家宣)는 하늘을 찌르는 시중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그가 죽자마자 대부분의 법령을 폐지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듯,
현실을 도외시한 권력자의 신념은 때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중국의 문혁(文革) 등 현대에도 그러한 사례를 찾기 어렵지 않다.
위정자들은 자신의 신념이 독선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함이 마땅하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경 넘는 김정은 야속했다…탈북소녀가 본 판문점 회담 (0) | 2018.06.09 |
---|---|
[삶과 문화] 중생의 아픔은 곧 내 아픔 (0) | 2018.06.07 |
[마음산책] 나만의 소확행(小確幸) (0) | 2018.05.31 |
그는 적멸을 향했으나, 詩는 여기 남았다 (0) | 2018.05.29 |
[내가 만난 名문장]경계를 허물면 자유가 보인다 (0) | 2018.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