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16 이정구 기자)
30년 기자생활 끝내고 '웰다잉 전도사' 된 최철주 씨
최철주씨는 아내와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을 종종 산책했다. 어느 평범한 날 산책을 마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함께 쓰며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약속대로 집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다 떠났다.
존엄한 죽음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 조인원 기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중환자실 들어가기 싫어. 지옥 같아."
암 투병 하던 딸은 소리 없이 메모로 절규했다. 목에 꽂은 영양 급식 튜브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평온한 가정을 꾸렸던 서른두 살 젊은 딸은 자궁경부암 말기 환자.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받던 딸은
항암 투병에 지쳐 수술도 거부했다. 대신 환갑 갓 넘긴 아버지에게 호스피스 특별 교육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원래 의료진과 종교인 대상 교육이었다.
수업 셋째 주 딸은 병실에서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장례식 바로 다음 날에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딸의 유언 같은 메모. 일간지 편집국장·논설고문을 끝으로 30년 넘는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던 최철주(76)씨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기자 경험을 살려 미국, 일본 등 '웰다잉 선진국'을 돌며 취재하듯이 '존엄한 죽음(웰다잉)'을 공부했다.
생전 딸이 했던 고민을 담아 2008년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책을 냈다.
딸이 떠나고 6년 뒤 예순아홉 아내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딸의 투병 과정을 함께 지켜봤고 웰다잉도 함께 공부했던 아내는 중환자실 대신 호스피스 치료를 택해 집에서 임종했다.
아내가 떠나고서 2014년 쓴 책은 '이별 서약'. 지난해에는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앞서 '존엄한 죽음'을 냈다.
세 권째 책을 펴냈고 칼럼도 계속 쓴다. 매달 강연도 꾸준히 하지만 죽음에 대해 들을 준비가 된 사람만 찾아간다.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 없이 이벤트로 부르는 곳은 핑계를 대고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월 시행된 존엄사법에 따라 심폐 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환자는 지난 14일까지 9573명. 웰다잉 전도사가 된 그를 만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존엄한 죽음이 가능한지 물었다.
암(癌)으로 떠난 딸, 그후 웰다잉 전도사로
―존엄사법 시행 어떻게 봅니까?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이제 '웰다잉' 하드웨어는 갖춰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한참 부족합니다.
웰다잉법 도입되니 일본 기자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었느냐고 묻더군요.
일본은 서점에 '죽음·죽어감(death· dying)'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인데 정작 웰다잉법은 없습니다.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후생성 고시는 있지만 아직 법을 만들 정도로 시민 의식이 조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죠.
법은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우리와는 반대입니다."
―왜 부족하죠?
"결국 무관심이죠. 존엄사나 연명 치료 중단 여론조사를 해보면 열에 아홉은 찬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뜯어보면 찬성은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모임이나 강연에서 웰다잉을 전도하면
'네, 웰다잉 좋죠'라고 말하고 귀 닫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좋은 법이 있으면 뭐 합니까.
사람들이 쓸 생각을 안 하는데요."
―어느 누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싶겠습니까?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보세요. 공공 장소에 가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 심지어 출근하고 학교에 가는 평범한 일상까지 공
포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덮쳤죠. 지금도 시간 나면 병원 중환자실 앞이나 응급실 앞에 가봅니다.
정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나 대기업 CEO, 병들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가죠. 누구나 그런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삶의 질(웰빙)'에 대한 고민만 했는데 죽음의 질도 높여야 합니다.
이번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복지 제도가 생긴 거죠."
웰다잉 좋지만 귀 닫고 남 일 취급
―강연은 누가 많이 듣나요?
"아무래도 장년, 노년 분이 많죠. 신체 나이로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분들. 식자층도 많고요.
그런데 그런 분일수록, 안다는 사람일수록 더 고민을 안 합니다. 반대로 젊은 친구들도 종종 옵니다.
국립도서관 강연 때였는데 열여섯 살 여학생이 다음 강연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면서 다음 강연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홍익대 근처 강연에서는 20대 후반 청년이 강연 끝나고 질문 시간에
스위스 의사 조력 자살(안락사) 방법을 묻더라고요. 아픈 청년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인데 그 용도로 2000만원을 따로 저축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나이 회사원이라면 집이나 결혼 자금을 모을 텐데요.
"사연이 있나 궁금해서 물어보니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고요.
언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데 그때 돈이 없거나 해서 원치 않은 모습으로 생(生)을 이어가는 건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를 대비해서 저축했다고 합니다."
―그게 좋은 선택일까요?
"존엄한 삶을 살다 떠나고 싶은 것.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준비하는 건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자살을 부추긴다거나 생명 경시와는 거리가 멀죠. 진로, 직업, 결혼 같은 인생에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내리면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가장 슬픈 일 아닙니까."
―자녀가 부모한테 그 결정을 권할 수 있을까요?
"먼저 꺼내면 '후레자식' 소리 듣기 십상이죠(웃음).
부모가 먼저 운을 떼야 하는데, 이야기가 나와도 바로 맞장구치면 절대 안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한발 물러났다가 '생각이 그러하세요?" 하며 대화를 시작해야죠.
요즘 드라마를 보면 불치병이나 난치병 환자 꼭 나오는데 그걸 화제로 꺼내도 좋고요."
―그래도 죽음을 미리 말하는 건 부담스러운데요.
"삶 이야기로 바꿔서 이야기해야죠. 동전 앞뒷면이죠.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마지막 삶은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라고 질문을 바꿔보면 됩니다.
'죽음 롤모델'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고민해도 좋죠."
―죽음 롤모델요?
"해외를 보면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택한 유명인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최근 구달 박사도 그렇고요.
우리나라에 그런 죽음을 택한 사람 떠올려보세요. 누가 있을까요?
해외 사례를 접하면 '와, 저런 죽음도 있구나' 하고 감동하긴 하지만 전제가 '저 사회에서는'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우리나라에 정말 없었을까요?
"존엄한 죽음 맞이하신 분들이야 있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같은 훌륭한 분들. 종교인이 많은데 그분들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나라에서 진짜 존엄한 죽음 택하는 사람들은 소시민이에요. 눈에 띄지 않죠."
104세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지난달 10일(현지 시각) 스위스를 찾아 의사 조력 자살을 택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환희의 송가' 들으며 자신이 희망한 죽음을 맞았다.
사망 전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생을 스스로 마칠 기회를 얻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죽음 이야기는 부모가 먼저, 가족과 미리 약속해야
조용히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4일까지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연명 의료에 대해 미리 의사를 표시해 남겨두는 것·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를 작성한 사람은 2만8874명.
실제 행동으로 옮긴 환자도 많지만 논란의 불씨가 있다.
존엄사법에 따라 연명 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환자 중 자기 의사로 결정한 사람은 3340명(치료 중 연명 의료 계획서 작성
3286명,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54명). 2배 가까운 나머지 6233명은 가족이 결정을 내렸다.
환자 가족 중 2명 이상이 연명 치료에 대한 평소 환자의 의견에 대해 진술했거나,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결과다.
의식 없이 사경 헤매는 환자의 생사를 가족이 결정할 수 있을까.
최 선생은 그때를 대비해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미리 써뒀다.
'내가 불치병에 시달리며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를 대비해서 나의 가족과 나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내와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날까' 농담하며 함께 쓰고 서로 증인이 됐다.
지난 2011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 최 선생은 약속을 지켰다.
―약속을 지키셨네요.
"웰다잉 공부할 때 아내도 항상 같이했습니다. 일본, 캐나다로 죽음을 취재하러 갈 때도 동행했죠.
함께 '불필요한 치료는 받지 말자' '호스피스 치료를 받자'는 약속을 하고 웰다잉을 준비했습니다.
집에서 편안히 임종했습니다."
―고민하지 않으셨나요?
"지금도 수시로 자책합니다.
'그래도 구급차를 불려야 하지 않았나' '아니야 안 부르기를 잘했어' 두 생각이 싸웁니다.
그래도 '정말로 잘한 일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제 결정에 대한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약속을 깨고 연명 치료를 했다면 아내나 가족이나 분명히 더 힘들었을 겁니다.
가족이 죄책감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건데 미리 한 약속이 있다면 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환자 본인 뜻을 모른다면 가족이 결정할 수 있을까요.
"힘든 결정입니다. 효도를 다하지 않는다고 오해받기 쉽죠. 본인 뜻은 알 수 없잖아요.
가장 좋은 건 환자가 미리 그 뜻을 밝혀두는 거죠.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써두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에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어떻게 떠났으면 좋겠다'처럼 지나가는 말이라도 하면
가족이 기억해두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기억해두면 더 좋고요.
만약 이런 기억까지 없다면 결정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가족이 결정은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님 때는 어떠셨나요.
"딸은 처음에 항암 치료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 불며 싸우기도 했고.
딸도 마지막에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다 떠났습니다. 그 와중에 병원 복도에 붙은 호스피스 교육 공지를 봤나 봅니다.
메모로 저한테 그 수업을 들어보라기에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아내 일로 이어지더군요."
―괜찮은 죽음이라는 게 있을까요?
"2009년 대법원이 처음으로 존엄사 판결을 내립니다.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게 해달라는 가족 요구를 병원이 거부해서 소송까지 간
'김 할머니' 사건입니다. 판결문을 보면 김 할머니가 예전에 당한 교통사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고로 팔과 몸에 상처가 생겼는데 무더운 여름에도 그 상처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긴 치마와 긴 소매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게 근거가 됐어요.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 중환자실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남고 싶었을까요?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미리 고민하고 '난 이렇게 죽겠다, 아니 난 이렇게 마지막 삶을 살겠다'고 알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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