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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07] 눈먼 기관차 대한민국호

바람아님 2018. 7. 3. 05:59

(조선일보 2018.07.03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지 오웰 '1984'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배경인 '오세아니아'는 2차 세계대전 후 세 나라로 재편된

세계의 한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진실성(眞實省)'의 역할은 역사를 수정하는 것이다.

공산당의 무오류를 입증하기 위해서, 몇 년간 전쟁하던 나라와 동맹국이 되고, 동맹국과 전쟁하게 되면

해당 국가들에 대한 과거의 모든 적대적 발언은 우호적 선언으로, 우호적 발언은 적대적 메시지로

수정하는 것이다.


2등 공산당원으로서 '진실성'의 직원인 주인공 윈스턴은 모든 국민을 전방위로 옥죄는 당을 증오하지만 진실성에서

'과거를 수정하는' 작업을 그나마 자기 능력의 배출구로 즐긴다. 때로는 과거 조작에 멋진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창의력이 뛰어난 당원은 경계당하다가 결국 숙청되기 때문에 적절히 자제한다.


문재인 정부를 지켜보니 독재 정권은 창의적이고 유능한 인물을 원하지 않는다.

창의적 인물은 정부의 정책을 맹목적으로 집행하기보다는 우수한 정책으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니까.

독재 정권은 어떤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까를 고심하지 않고 국민의 맹목적 지지를 요구한다.


드루킹 사건 특검이 시작되는 시점에 문 대통령은 드루킹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인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을

정무비서관으로 사실상 승진시켰다. 이런 일을 태연히 하는 정부라면 무슨 일을 삼가겠는가?


전임 대통령이 국민의 국가관을 바로잡기 위해서 지시한 국정교과서 집필을 뒷받침한 사람들이 수사를 받고,

국고 7200억원을 들여서 새것처럼 정비한 원전(原電)을 아무런 설명 없이 폐쇄한다. 이미 나라를 비틀거리게 하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더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집행하겠다고 인사까지 단행했다.


쿠데타식 언론 장악, 사법부·검찰·경찰 힘 빼고 길들이기, 내각 역할 축소, 국민의 지력을 저하시키는 교육, 약탈적 증세,

국민의 성취 의욕을 꺾는 복지 정책,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개헌 시도, 그리고 전 정권 실력자들을 모조리 산 미이라로

만드는 '적폐 청산'. 이 무시무시한 정책들이 아무런 논의 과정 없이 발표와 함께 시행된다.


대북 정책에 대해서 국민은 세기적 쇼의 관객일 뿐이고 정부가 지정한 국가 유공자가 누구이며 어떤 공로가 있는지,

사실은 국가 전복 세력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호는 국민을 인질로 싣고 정차역 없이 달리는 눈먼 기관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