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7.04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침 바르기' 동반한 독서는 숭고한 행위…
올 여름휴가에 '성찰적인' 책 읽기를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한국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큰일이라고 아주 정기적으로 호들갑이다.
독서율에 관한 통계 자료들을 검색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뭐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매번 '꼴찌 증명의 기준'으로 동원되는 'OECD 평균'에도 그리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독서율이 높은 나라는 주로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과 같은 북유럽의 나라이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일단 겨울이 무지하게 길다. 오후 2~3시면 깜깜해진다. TV도 너무 재미없다. 대부분 토론프로그램이다.
드라마도 보고 있기가 참으로 딱한 수준이다.
한국처럼 '출생의 비밀' 따위는 그리 큰 문제 안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긴 겨울밤, 붉은 백열등 불빛 아래 책을 읽는 것이 우아하게 폼도 나고, 시간도 잘 간다.
책에만 '지식'과 '정보'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많이 억지다.
내겐 책 읽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는 대학생 아들 둘이 있다.
나는 매일 강박적으로 책을 읽는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내 아들들이 훨씬 많이 안다.
팩트도 정확하고 아주 논리적이다.
매번 나만 "니들이 뭘 알아!" 하며 흥분한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모르는 쪽은 나다.
내 아들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검색'한다.
정보 전달의 효율을 따지면 책은 스마트폰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지식'과 '정보'를 '동영상'과 '검색'으로 훨씬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책은 도대체 왜 읽어야 하는가?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침 바르기'는 '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뭉칫돈이 생기면 우리는 한 장 한 장 침을 발라가며 돈을 센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침을 바르고 싶어 안달 난다.
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아날로그 책 읽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
침을 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수록 '침 바르기'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일단, 돈 셀 일이 없어졌다. 죄다 카드로 계산한다. 카드도 이젠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
돈은 그저 계좌에서 계좌로 이동할 뿐이다.(화폐는 이제 '입자'가 아니다. '파동'이다.
'가상 화폐'의 미래도 이 관점에서 보면 아주 명확해진다. 이건 엄청난 이야기다.)
나이 들수록, 사람에게 침 바를 일도 없어진다.
젊은 시절, '타액 분비 과다'였던 내 친구 천일이도 이젠 '구강건조증'이다. 남은 것은 책뿐이다.
'침 바르기'라는 존재 확인의 최후 보루가 독서라는 이야기다.
침 바를 일이 없으니, 그렇게들 '분노와 적개심의 침'만 사방에 퉤퉤 뱉는 거다!
‘카우치(Couch)’는 무의식의 통로다. /그림=김정운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 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다.
영상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는 일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다. 속기 쉽다는 이야기다! 책은 다르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그 옆의 빈 곳에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적는다.
밑줄을 긋고, 빈 곳에 내 생각을 문자화하는 행위는 매우 성찰적이다.
'내가 왜 이 구절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자기성찰(self-reflection)'의 메커니즘과 '밑줄 긋는 독서'의 메커니즘이
심리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의미'의 생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사건과 경험들에 대한 기억은 주체적 관심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온다.
인간의 의식 또한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다. '입자'와 같은 개별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행위가 바로 '의미 부여'다.
개별 사건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팩트'에 불과한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의미 부여'가 의식의 본질이다.
('팩트체크'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그 '팩트'를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철저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일부 편두통 환자들에게서 기억이 '스틸사진'처럼 깜박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의식의 '편집 기능'이 망가지는 이런 증상을
그는 '영사시(映寫視·cinematographic vision)'라고 명명했다.
독서는 저자의 'B&G(뻥&구라)'에 내가 끊임없이 개입하며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과 내용을 새롭게 편집하는
아주 특별한 '의미의 구성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밝혀내기 위해 '카우치(Couch)'라 불리는 기다란 소파를
이용했다. 편안하게 반쯤 누운 내담자에게서 숨겨지고 억압된 의미의 편집 과정을 '내성법(Introspection)'으로
끄집어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 있지 않으면, 누워 있다. 카우치에 기대어 있는 '어정쩡한 자세'는 매우 문명적이다.
의미 구성의 독서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왕 책을 읽으려면 긴 안락의자에서 편안하게 읽어야 폼 난다.
책상에 꼿꼿하게 앉아 정독하려니 독서가 그토록 부담스러운 거다.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띄엄띄엄 골라서 읽으라고 목차도 있고, 색인도 있는 거다.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느 세월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골라 읽는 '발췌독'이야말로 '의미 구성'이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다.
책은 진짜 재미있고, 정말 중요한 것만 끝까지 읽는 거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 가지 말고 계획한 휴가비로 책이나 수십 권 사서 읽자!
이왕 돈 쓰는 김에 내년치 휴가비도 앞당겨 폼 나는 '프로이트식 카우치'도 장만하자!
침을 마음껏 바를 수 있는 책이 그래도 싸다!
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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