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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묵자(墨子) (1) 타인도 나를 돌보듯…‘兼愛(겸애)’의 사상가

바람아님 2018. 6. 28. 19:34

(매일경제   2015년 0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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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무위(無爲) 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노자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무위는 사람에 따라 희망이 되거나 황당함을 느낄 정도로, 그 반응이 판이하다.

가령 하던 일에 지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무위는 희망으로 느껴진다.

뭔가를 끊임없이 꿈꾸기보다 일이 저절로 진행되게끔 맡기자는 얘기가 ‘복음’처럼 들릴 수 있다.


반면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계획을 세워 미래 비전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무위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기 쉽다.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끊임없이 조사하고 검토해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는데,

무위라고 말하면 무책임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철학의 개념은 특수한 문맥으로 쓰이느냐 아니면 일반적인 맥락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컨대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덤벙거리지 말고 이것저것

잘 따져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특별히 문제 삼을 게 없다.

하지만 이 말이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을 따르라’는 말로 쓰인다면,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무위나 무위자연도 앞에서 본 ‘이성’과 마찬가지다. 특수한 문맥과 일반적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무위가 복음인지 잠꼬대인지 밝히려면, 개념을 좀 더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한자 ‘위(爲)’는 ‘하다’라는 뜻으로 영어의 ‘do 동사’처럼 사람이 하는 가장 일반적인 동작을 뜻한다.

오늘날 한자의 모양에선 잘 안 보이지만 초기 글꼴을 보면 ‘위(爲)’자는 코끼리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오늘날 중국 허난성(河南省) 지역은 지금보다 기후가 더 따뜻한 열대성 기후대에 속했고 그 덕분에 코끼리가

그 일대에 서식한 것으로 알려진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코끼리가 사람을 대신해 전쟁과 노동에 종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자가 만들어진 당시에도 코끼리를 노동에 동원했던 듯싶다.

이로 인해 코끼리가 일하다라는 뜻의 ‘위(爲)’자 그 모습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일하다’라는 뜻의 ‘위’는 그냥 일상·직업적인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을 뿐 아직 철학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문자를 만드는 시기를 지나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화적 사고에 머무르지 않고 이성적 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하늘은 우주목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천지 사이를 가득 메운 기(氣) 덕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세계는 상제(上帝)나 천(天)이 명령하는 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목표와 방향성을 정하고 그것을 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약하면 사람이 조금씩 상제와 신화를 대신해 세계를 설계하고 기획하는 주체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위(爲)’는 단순히 일상적이고 직업적인 분야에서 힘을 쓴다는 뜻에 한정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물건을 만들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려는 욕망, 의지, 목적 등을 가리키게 됐다.

‘위(爲)’자가 동사에서 명사의 의미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도가는 무위(無爲)를 주장한다”는 말에서는 이제 철학 개념으로써 ‘위(爲)’를 만날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禮)에 따라 처신하자고 주문했다.

예에 따른 행동은 점잖고 우아해 사람 사이를 편하게 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마음대로 하는 행동은 투박하고 거칠어서 사람 사이를 불편하게 하고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무슨 일을 벌이거나 행동을 하면 반드시 예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자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들이 특정한 방향을 정해놓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것은 불필요한 족쇄나 과도한 구속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노자’를 읽으면 기존 사회의 규범이나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이 많이 나온다.

규범과 제도를 강조하면 사회가 고통을 겪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식이다.

노자 제57장에는 “세상에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들이 더욱 가난해진다.

민간에 날카로운 도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가 더욱 혼란해진다.

법령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도적이 더욱 늘어난다”라는 구절이 있다.


도적을 잡기 위해 법령을 더 촘촘하게 만들다 보면 사람들이 더 많이 법에 걸려들게 된다.

사회를 안전하게 하느라 금기를 자꾸 들먹이지만 금기는 사람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이로 인해 노자는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예는 사람다움을 드러내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을 담아내지 못하고

사람 사이의 혼란을 부추기는 기원이다.” (제38장)


노자는 또 제도와 규범을 지키지 않고 내다 버린다면,

오히려 개인과 사회가 건강을 되찾고 밝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역설의 언어를 사용한다.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성인이나 뭐든 안다고 생각하는 지자(知者)를 쳐다보지 않으면 오히려 백성들의

‘사람살이’가 100배, 1000배 나아진다. 사랑과 정의라는 도덕을 강조하지 않으면 오히려 백성들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도와 너그러움을 회복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기교와 이익을 돌아보지 않으면 도적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제19장)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자가 당시 인류가 일궈온 문명을 전부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안 문명을 제안하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자’에 ‘차별이 없던 상태로 돌아가자’는 회복의 언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으므로 많은 이들이

노자를 ‘문명을 거부한 사상가’ 또는 ‘문명의 타락을 경고한 철인’으로 본다.

특히 노자가 이상사회로 꼽고 있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 당시의 ‘부국강병(富國强兵)’ 모델과 정반대되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체계 부정의 인물로 간주됐다.


이런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지만 다소 성급한 결론이다.

노자는 인류가 상제와 신화로부터 벗어나 이성에 의거해서 이상세계를 세웠지만,

그것이 인류를 타락으로 이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비판을 곧 문명의 진행을 중단하고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의 신호로만 볼 수는 없다. 노자의 제안은 복고의 틀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류는 자신이 출발했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진행된 궤도가 얼마나 어긋났는지 반성하는 것을

포함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이런 점에서 노자의 도(道)가 무엇인지 그 정체가 밝혀져야 한다.

분량의 제한이 있으므로 다음에 도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길은 결코 복고의 단선이 될 수 없다.

이 길은 복고를 포함하면서 그간 진행된 궤적을 반성하고, 현재와 과거를 수없이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통해

타락하지 않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노자는 이 방향을 외부의 원인(힘)이 끼어들지 않고 자체 힘으로 자발적 생성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무위자연’으로 봤다. 노자는 말한다.


“자연을 봐라. 아무런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이 척척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그러니 뭣하러 그 과정에 끼어들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을 짠다고 법석이다.

노자는 ‘새해에 계획을 세우자’가 아니라 ‘왜 계획을 세우는가?’부터 따져보자며 우리를 계획 세우기 이전으로 초대한다.

계획이 잘못됐다면 급한 대로 하나둘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한번 시작하면 앞으로 쭉 나아가는 직진 본능 또는 관성의 힘을 거스르는 ‘괴력’이다.

이때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그 괴력이 더욱 빛나 보인다.

만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처음 상태로만 돌아가 있다면 괴력의 발휘는 헛힘을 쓰는 것에 불과하다.

무위는 헛힘이 아니라 참된 힘의 드러냄이다.




이번 호부터 신정근 교수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칼럼을 다시 연재합니다.

노자와 묵자에 관한 글을 각각 10회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신정근 교수는 서울대 철학 박사를 받았고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와 유교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최근 한국의 시각을 담은 동양철학을 연구 중이며 여러 답사와 강연을 통해 ‘주인되기와 손님되기의 상호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동양철학의 유혹’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

‘사람다움의 발견’  ‘철학사의 전환’ 등이 있습니다.  





신정근 교수의 저서 :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신정근 지음/ 북이십일/ 2011/ 376 p
148.3-ㅅ898ㅁ/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동양 철학의 유혹
신정근 지음/ 이학사/ 2003/  526p
150-ㅅ898ㄷ / [정독]인사자실서고2(직원에게 신청)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 2014/ 418 p
150-ㅅ898동/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사람다움의 발견
신정근 지음/ 이학사/ 2005/  640p
152.2-ㅅ898ㅅ/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철학사의 전환 : 동아시아적 사유의 전개와 그 터닝포인트
신정근 지음/ 글항아리/ 2012/ 735 p.
152-ㅅ898ㅊ/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묵자(墨子)


  
(10) 마지막회…힘보다 정의 중시한 돈키호테적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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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정한 ‘상벌’만이 응보적 정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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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늘의 뜻’ 앞세워 응보적 정의 실현 
( 매일경제  2015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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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묵자가 문화예술을 반대한 까닭은?
( 매일경제  2015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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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쟁 반대’ 말보단 행동으로 실천
( 매일경제  2015년 04월 13일)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349424


(3) 경쟁에서 협력으로…‘兼以易別(편가름을 아우름으로 바꾸다)’ 강조 
( 매일경제  2015년 04월 06일)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324329


(2) 학문의 근본은 배움을 실천하는 것
( 매일경제  2015년 03월 30일)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1216463


(1) 타인도 나를 돌보듯…‘兼愛(겸애)’의 사상가
(매일경제   2015년 03월 23일)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9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