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28 남정욱 작가)
'8마일'
남정욱 작가
"흑인 셋이 싸움질하고 있을 때 해결 방법은? 농구공을 던져주면 된다."
이런 인종차별적 농담은 일부 백인에게는 하나도 안 웃기는 '진담'이다.
그들은 흑인 게토(격리된 거주 지역)의 특징인 빈곤과 마약, 폭력의 3박자를 흑인들의 타고난
소질로 여긴다. 한발 더 나가 LA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백인' 경찰이라면 "공을 왜 줘?
그냥 곤봉으로 뭉개버리면 되지"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은 신호 위반을 이유로 흑인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내 집단 폭행 끝에 청각장애인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1991년 로드니 킹 사건이다. 며칠 후에는 15세 흑인 소녀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재판 결과 폭력 경찰은 무죄, 한국인은 집행유예였다.
폭동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다. 60명 이상이 사망한 LA 폭동에 밑밥을 깐 노래가 있다.
'당당한 검둥이들'이라는 그룹이 부른 '망할 경찰 ×들'이라는 곡(曲)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욕설로 도배하는 이 노래는 미국 주류 사회에 던지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도전장이었다.
이런 유의 노래를 보통 '갱스터 랩'이라고 부른다('당당한 검둥이들'이라는 그룹에는 본업은 갱, 부업은 DJ도 있었다).
그러나 랩(rap)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가사가 과격했던 것은 아니다.
랩을 요즘 음악으로 아는 분이라면 랩의 역사가 50년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1973년 8월 11일 뉴욕에서 쿨 허크라는 DJ가 파티를 연다(힙합을 생일이 있는 음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특이했던 건 쿨 허크가 댄스곡을 원곡대로 재생한 게 아니라 턴테이블 두 대를 이용해 리듬과 비트가 강한 부분만
연결해 틀었다는 것이다. 이걸 브레이크비트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혁명적 발상이었다.
파티를 하자면 사회자(MC)가 있어야 한다.
두 손을 다 쓰느라 DJ들은 마이크를 한쪽에 밀어두었고 대신 파티 참가자들이 나와 번갈아 마이크를 잡았다.
일러스트=이철원
처음에는 밑도 끝도 없이 친구 이름을 부르거나 "아버지 아직도 감옥에 계시냐?" 따위의 잡담을 했는데
이게 진화하여 랩이 된다. 기발한 레코드판 틀기와 랩은 디스코 시대를 끝내고 힙합 시대를 연다.
이 파티의 단점은 비싼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게 1977년 7월의 뉴욕 정전 사태다.
약탈, 방화가 난무하는 가운데 음악적으로 각성된(!) 일부는 전자용품점을 집중적으로 털었다.
이후 파티의 음향 장비 수준은 평준화되고 그룹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 랩 가사(歌詞)에는 기본 틀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랩을 잘하냐'와 '너의 랩은 왜 그렇게 후지냐'는, 제 자랑과 남 깎아내리기였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여자들을 유혹해 신나게 놀자고 하는 것이 보편적 랩 가사였다.
그런데 1982년 '메시지'라는 곡이 나오면서 사회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가사의 첫 줄은 이렇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지." 비로소 랩은 자신만의 장기를 이해하게 된다.
다른 장르의 음악도 사회 비판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따발총처럼 쏴붙이는 랩 특유의 공격성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이제 랩 가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게 4500㎞ 떨어진 서부로 건너가 갱스터랩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스트코스트(뉴욕)와 웨스트코스트(LA)의 랩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미국 주류 문화로 진입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도 랩은 유행처럼 번진다.
커티스 핸슨 감독의 2003년 작품 '8마일'은 "랩, 우리도 할 줄 알아" 외치고 나온 디트로이트 래퍼들의 이야기다.
에미넴이라는 백인 래퍼가 엘비스라고 비웃으며 자기를 무시하는 흑인들과 벌이는 랩 배틀(입담 전쟁)은
모르고 봐도 재미있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랩의 진수인 라임('아파트, 하트'처럼 마지막에 같은 소리가 나는 각운 맞추기)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 영화 한 편 다 보기 귀찮은 분은 인터넷에서 그 부분만 찾아 보셔도 된다.
주류 문화로 부상하는 동안 랩 가사는 많이 달큼해졌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노래들 역시 꾸준히 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총기 문제를 다룬 최근 히트곡 '디스 이즈 아메리카'를 들으며 "그렇지, 이런 게 랩이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소생뿐이 아닐 것이다. 참고로 심장이 약한 분은 안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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