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정부 경제 실험 파산, 세금으로 메꾸고 책임은 떠넘기기/[이정재의 시시각각] 노동자만 국민인가

바람아님 2018. 7. 20. 10:25

[사설] 정부 경제 실험 파산, 세금으로 메꾸고 책임은 떠넘기기


조선일보 2018.07.19. 03:20


정부가 올해 일자리 증가 목표치를 32만개에서 18만개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2년간 세금 33조원을 일자리 사업에 쏟아부었거나 투입할 예정인데도 이 모양이다.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에서 2.9%로 낮추고 투자·소비·수출 등 주요 지표 전망치도 다 내려 잡았다. 경제가 내리막 조짐을 보인 것은 몇 달도 더 된 일인데 정부는 "경제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체감 경기와 민생이 엄중한 상황"이라고 한다. 더 이상 포장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의 실토는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운 실험적 경제 운영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기업 활성화라는 정공법 대신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로 급격하게 올리고 근로시간을 무리하게 줄이는 등의 친노동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민간이 만든다는 건 고정관념"이라며 '세금 고용'까지 주장한 그 정책이 성공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패한 정책을 더 강화하는 대책을 들고나왔다. 또 '세금 주도'다. 하반기에 정부가 4조원 가까이 더 풀고, 내년부터는 세금으로 저소득 근로자 가구를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 대상자는 2배, 금액은 3배 늘리겠다고 했다. 334만 가구에 3조8000억원을 뿌리겠다고 한다. 5가구 가운데 1가구가 이 세금 살포 대상이 된다. 놀라운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소상공인·중소기업인의 불만은 화살을 대기업으로 돌리려 한다. 대기업과 임대업자 등 '갑(甲)의 횡포'가 문제라는 것이다.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서울시장,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모두 나서 조사하고, 프랜차이즈 가맹 수수료 인하하고,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프랜차이즈는 소상공인의 7%에 불과하다. 편의점도 7만여 곳 가운데 4만여 곳만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고 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1분기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에 불과하다. 이마트24는 수년째 적자다. 여기에 무슨 횡포와 갑질이 있겠나. 임대료는 경기 침체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소규모 상가 평균 임대료는 2.3% 내렸다. 서울은 올랐다지만 0.36%다. 변명과 억지, 다른 쪽에 화살 돌리기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책이 실패해 최하위층 소득이 감소하고 분배 양극화가 15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으면 그 정책을 바꿔야 한다. 대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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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노동자만 국민인가

중앙일보 2018.07.19. 01:44

 

영세 자영업자 몰락 땐
소득주도 성장 불가능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자영업자들의 집단행동에 정부·여당이 뜨끔하긴 한 모양이다. 당장 가맹 본사 조사에 나서고 신용카드 수수료와 임대료를 낮추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는 “최저임금보다 임대료와 가맹 본사의 갑질이 더 문제”라고 열변을 토했다.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을과 을의 투쟁으로 번진 최저임금 이슈를 자영업자와 건물주·대기업의 갑을 갈등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읽힌다. 단골 처방인 세금 풀기도 다시 등장했다. 근로장려세제(EITC)와 일자리안정기금 증액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여당의 생각과 대책이 고작 이 정도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자영업자들이 뿔난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얘기다.


한국의 자영업은 세계 최악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용인구의 25.5%(무급 가족종사자 포함)가 자영업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8%)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음식점은 특히 더하다.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미국은 0.6개인데 한국은 10.8개다. 하나만 있어도 될 음식점이 서넛, 심지어 10곳 넘게 몰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장사도 안 된다.


그러니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 가구 소득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 300만원 안팎이다. 반면 비슷했던 근로자 가구 소득은 올 1분기 월 558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빚은 더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당 빚은 1억1300만원(2016년 기준)으로 상용 근로자 가구(7700만원)의 1.5배였다. 벌이는 적고 빚이 많으면 결론은 하나다. 망한다. 자영업의 3년 후 생존율은 37%다. 3명 중 2명이 돈 잃고 몸 상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은 주로 350만 명의 영세 자영업자, 흔히 소상공인(업종별로 직원 5~10명 미만)이라 불리는 이들의 몫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올 1분기 영세 자영업자(하위 50%)의 월 소득은 241만원으로 지난해보다(243만원) 1%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던 바로 그 자리에 350만 영세 자영업자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다. “내 월급 빼서 알바생 주자는 거냐” “근로자만 국민이냐”부터 “최저임금은 자영업자 구조조정용”이란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자영업의 몰락은 소득주도 성장에도 직격탄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가게 문을 닫으면 영세 자영업자와 취업자 모두 소득이 사라진다. 한화투자증권은 16일 ‘가계소득이 늘어나지 못한 진짜 이유’로 ‘자영업의 쇠퇴’를 꼽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60세 정년 연장으로 늦춰졌던 베이비부머(1958~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한다. 올해 58년생 73만 명, 내년 59년생 74만 명이 쏟아진다. 가진 재주, 기술 없는 상당수가 또 자영업으로 내몰릴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소득 쇠퇴의 불길한 전주곡이 울리고 있다.


해답은 누구나 안다. 일자리다. 일자리를 어떻게 늘리는지도 누구나 안다. 기업을 뛰게 하면 된다. 기업은 기가 살아야 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이 아니라 진짜 기업을 ‘업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삼성의 성공은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라고 말할 때 가만있을 게 아니라 “경을 칠 소리”라며 말려주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기업에 특혜’라며 규제 철폐를 반대하는 여당과 청와대 강골들을 ‘그러지 말라’고 다독이면 진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정부·여당이 허구한 날 기업을 조이고 비틀고 혼내주기 급급하니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아직도 모른다면 삼류 좌파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