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19 김태근 경제부 차장)
靑·여당에서 9·13 대책 주도… 부처 반대에도 일부조치 강행
운동권 출신 행정관들이 전문 공무원들 무시하고 獨走
김태근 경제부 차장
9·13 부동산 대책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직접 발표하고 당일 저녁 공중파 TV에 출연해 취지까지
설명했다. 청와대 실세(實勢)들은 앞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관료 가운데 이번 대책을
"우리가 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공무원들은 보통 큰 정책을 내놓고 나면 스스로 공(功)을 부풀리는
성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아니다.
대책에 일부 관여한 어느 정부 인사는 "청와대 실세들이 핵심 내용을 틀어쥐고 결정했다. 나는 내용 대부분을 몰랐다"고 했다.
다른 공무원은 "기재부, 금융위, 국토부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청와대에 의견만 내는 식이었다.
일부 조치는 결정권을 가진 부처가 반대했으나 강행됐다"고 했다.
기재부는 발표 당일 아침에야 보도 자료 작성을 시작했다. 내용을 건네받아 타자수 역할만 한 셈이다.
이번 대책은 청와대와 여당 실세들이 밀실(密室)에서 거의 다 정했다.
민간 전문가는 물론, 전문 공무원들의 경고나 우려도 반영되지 않았다.
정상적 행정 절차까지 무시한 실세들의 독주는 이미 고용 참사로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 오만(傲慢)이
고쳐지기는커녕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거면 정부 부처는 왜 있고, 장관들은 왜 뽑았나.
특정 고위 인사의 아집(我執)도 문제지만 운동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 행정관들이 카르텔처럼 움직이는
것도 문제다. 국민은 이들에게 표(票)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정권이 이들에게 일을 맡기겠다면 책임지는 자리에서 실력을 먼저 검증하고 권한과 책임을 함께 지워야 한다.
익명의 장막 뒤에서 국민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경제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적폐(積弊)가 아닌가.
한 전직 장관은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이 발표도 하고 책임도 지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청와대 실세들의 독주(獨走) 탓인가.
집 가진 사람 대부분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보고 있는 이번 대책에는 반(反)시장적 내용이 많다.
1주택자까지 주택 대출을 금지하고, 서울과 수도권 등 특정 지역에 종부세율을 더 세게 물리고,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금액을 제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집값을 꼭 잡겠다는 그들의 절박함이야 이해되지만, 사유재산권 침해와 조세 법률주의 위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맹점은 서울·수도권의 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한 주택 공급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토부가 곧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수요자들이 납득할 만한 공급 계획도 촘촘히 준비하지 않고 어떻게 집값을 잡겠다는 건가.
고용 참사에 이어 집값 잡기마저 실패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과도한 규제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먼저 벼랑 끝에 몰린다.
지금 정부 실세들은 자신들이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글로벌 무역 전쟁과 인구 감소, 주력 산업 쇠퇴 등 한국 경제의 앞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다.
정부가 저지른 실책으로 올해 우리 경제는 2.7~2.8% 성장도 버겁다.
올해 성장률이 3%를 웃돌 미국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30만명을 넘겼던 취업자 증가 숫자는 올해 5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 부처 안에서 실제로 이런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 실세들은 "우리 경제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큰소리치고 있다.
청와대가 지금처럼 귀는 닫고 독주를 고집한다면, '서민을 위한다'는 이번 정부에서 정작 서민들에게
좋은 시절은 결코 오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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