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 노동개혁 없이는 일자리도 성장·분배도 없다

바람아님 2018. 11. 15. 07:44


중앙일보 2018.11.14. 00:17

  

'일자리 정부'의 초라한 성적표
세금으로 쉬운 단기 일자리 양산
소득주도성장 신기루 그만 좇고
혁신성장·노동개혁·분배개선해야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 전 노동부 장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 정부의 ‘1호 국정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정책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는 남은 임기를 떠올리며 시간과의 경쟁에 돌입한 듯하다. 사정이 호전될 것이라는 시점을 몇 차례나 미루어도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니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10월 24일 염치 불고하고 세금으로 단기 일자리 숫자를 늘리기로 한 것도 이러한 초조함의 발로이리라.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일자리 정책은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제로’를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최저임금은 속도전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폭 올랐다. 비정규직은 특히 공기업에서 ‘닥치고 정규직화’ 되고 있지만 정작 고용률은 떨어지고 실업자는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우선 고용의 양부터 늘리고 다음으로 질을 높이는 순으로 추진돼야 했는데, 기본적인 데서부터 거꾸로 됐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 기업을 위축시킨 채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의존한 정책사고가 애초부터 문제였다.


경제에 먹구름이 깔리고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마저 우려된다. 현 상황에서 정부는 마냥 서두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달려온 길을 더듬어 성찰함으로써 반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본디 성찰은 스스로가 자신에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청와대에 당장 뼈아픈 성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점을 지적당할 때마다 발끈하며 나서 ‘깨알 방어’에 급급하고, 심지어는 통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청장을 전격 경질하면서까지 ‘마이 웨이’를 외쳐왔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스승인 현실이 ‘바람 풍(風)’으로 제대로 알려주는 데도 ‘바담 풍’으로 우기는 ‘문제아들(enfants terribles)’부터 정리해야 비로소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론 11/14
‘고용 참사’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참담한 일자리 현실은 거꾸로 간 정책 때문이다. 좀 더 세분해 보자. 첫째, 정부가 소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신기루를 맹목적으로 좇아온 데에 근본 원인이 있다. 둘째, 정부의 역할을 과신한 탓인지 과도한 개입으로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셋째, 정작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노동개혁을 애써 회피해온 결과가 지금의 난국으로 이어졌다.


필자가 누누이 지적한 대로 개념의 논리성도, 현실적 적합성도 갖추지 못한 소득주도 성장은 임금주도 성장을 기계적으로 확대 복사해 급조된 신기루다. 신기루는 가까이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 지난 1년 반 동안 정부는 이 신기루 좇기에 ‘올인(다걸기)’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친’ 지금의 초라한 성적표가 말해준다.


이제 솔직하게 이 선거 구호를 내려놓고 분배 개선의 정책패키지로 다듬어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한다. 이에 따라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혁신성장-노동개혁-분배개선’으로 재정리해 작동할 수 있게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와 재정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1년 반 동안 정부는 무소불위에 가까운 힘을 행사해 왔다.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제로를 위해 동원한 무리수는 노동시장을 왜곡해 청년들의 꿈을 앗아가고 이런 가운데 고용세습이란 적폐마저 쌓아가고 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지만 인력 수급에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문 대통령이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상식 수준의 진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의 역할을 제자리에 갖다놓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개혁 없이 성장과 분배는 물론 일자리 사정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유독 노동개혁은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는데 이래서는 일자리 정부라는 간판이 무색해진다. 사회 양극화의 저변에 똬리를 틀어 경제성장과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혁파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통해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관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신기루는 그만 좇고 노동개혁을 통해 명실상부한 ‘일자리 정부’로 거듭나길 바란다.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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