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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남 칼럼] 흥청망청 성장 과실 따먹다 공든탑 무너질라

바람아님 2018. 11. 12. 07:12
디지털타임스2018.11.11. 18:04

      

강주남 산업부장

지난주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2018 일본 취업 박람회'. 소프트뱅크와 닛산, 라쿠텐 등 112개 일본기업이 실시한 현장 면접에 우리 취업 준비생 수천 명이 몰려 열기가 뜨거웠다. 아베 신조발(發) 친기업 정책에 일본 고용 시장은 1970년대 고도성장기 이후 44년여 만에 최대 호황이다.


이웃나라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2년차 성적표는 참혹하다. 일자리는 줄고 청년 실업자는 더 늘었다. 올 3분기 청년 실업률(9.4%)과 실업자수(111만명), 취업준비생(73만명)은 1999년 외환위기 이후, 또는 통계 작성이래 최악이다. '취업 지옥'에 사는 우리 청년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한 'A(All)포세대'가 됐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투자·고용·내수 등 거시지표는 연일 '사상 최악' 기록 경신 행진이다. 수십조 세금을 퍼부어 '공공 알바' 자리를 급조했지만 내수는 더 얼어붙고 있다. 홍대·명동 등 대형 상권과 백화점, 면세점 등 유통시장은 중국 관광객과 보따리상만 쳐다보는 천수답 신세다. 주력 산업도 일제히 '내리막길'이다. 해운이 몰락한데 이어 조선도 구조조정 한파가 휘몰아치고 있다. '말뫼의 눈물'로 불렸던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공장의 대형 크레인은 일감이 없어 지난 8월 가동이 중단돼 '울산의 눈물'이 된 지 오래다.


자동차 산업도 악화일로다. 올 3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사상 최악인 1.18% 까지 떨어졌다. 100원어치 팔아 꼴랑 1원 남겼다. 은행 이자만도 못한 수준이다. 현대차가 이 지경이니 중소 부품업체들이 줄도산 하는 건 시간문제다. 현대차 국내 공장에서 차 한대 만드는 데 26.8시간(HPV)이 걸린단다. 14.7시간인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두 배 수준이다. 도요타(24.1시간), 포드(21.3시간), GM(23.4시간) 보다도 더 길다. 반면, 한국의 5개 완성차 업체의 임금은 9213만원으로, 도요타(9104만원), 폴크스바겐(8040만원)보다 높다. 현대차의 추락이 노조의 잦은 파업과 고임금·저효율 기업 구조가 빚은 예고된 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신흥 수출효자 업종인 화장품과 게임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 시간 근무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직격탄을 맞았다. 아모레퍼시픽 그룹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0% 급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서 벗어났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에 걸려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게임업종도 사정은 비슷해 엔씨소프트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8%, 넷마블은 40% 급락했다. 주 52시간 규제로 신작 출시가 줄줄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우리 주력산업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건 시장을 무시한 이념적 정책 실험의 부작용 탓이 크다. 반시장·반기업 정서에 기반한 규제 일변도·친노동 정책이 부른 재앙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파탄 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죽 답답했으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개탄했을까. 패싱 끝에 독박 쓴 관료의 일침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던 9일 "대기업에 성장의 결과물이 집중됐다. 공정경제는 성장 과실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이라며 대기업을 압박했다. 소득주도 성장 뿐 아니라 이익공유제 등 반시장적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새 경제사령탑도 성장 보다는 공정한 분배를 추진할 '말 잘 듣는' 관료를 임명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시민운동가 출신 청와대 정책실장 기용도 위기 대처가 아닌 규제 강화, 대기업 옥죄기로 읽힌다. 경제 체력을 고갈시키는 반시장적 포퓰리즘 정책이 줄줄이 실험대에 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제 사령탑이 바뀌고 대통령이 정책 고수 방침을 밝힌 날 공교롭게도 바다 건너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올해와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5%, 2.3%로 낮춘 것이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2년과 비슷하고,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7%) 이후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무디스는 특히 한국 경제 약화 원인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투자 부진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 추가 조치도 우려된다.


위기의 암울한 그림자는 덮쳐오는데 선장과 선원들은 역주행 항로 실험과 밥그릇 타령에 함몰된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건설하는 데는 반세기가 걸렸다. 하지만 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고, 좀비처럼 흥청망청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 데 취하면 공든 탑은 한 순간에 무너진다.


강주남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