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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85] 국화

바람아님 2013. 11. 28. 10:51

(출처-조선일보 2010.11.1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요즘 국화가 제철이다. 전국 여러 곳에서 국화축제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가로수 옆 화분마다 노란 국화꽃들이 가득하다. 15세기 중국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국화는 이제 세계 전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초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해마다 화분을 사서 즐기다가 꽃이 지면 버리곤 해서 잘 모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화는 사실 여러해살이풀이다. 여러 해 두고 기르면 줄기 아랫도리가 제법 나무처럼 변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국화를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사랑했다. 그러나 막상 문인화의 소재로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에 비해 푸대접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미술에 조예가 깊지 못해 그런가 동양화에서 국화를 접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사군자를 칠 때 어쩌면 우리 붓의 획으로는 다른 '군자'만큼 멋을 내기 힘들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획수가 늘면 글씨고 그림이고 조잡해지기 마련이다.

한편 국화는 동양문학, 그중에서도 시조나 시의 소재로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국화를 주제로 한 중국 한시가 수백 편에 이른다. 그런데 그 유명한 '국화 옆에서'에서의 시인 서정주는 국화를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 표현했다. 문학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시련을 겪으며 더욱 성숙해진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말하지만 생물학자인 나는 좀 불편하다. 꽃이란 본래 식물의 성기이기 때문이다. 동물처럼 연모하는 암컷에게 접근하여 직접 짝짓기를 시도할 수 없는 식물은 벌건 대낮에 자신의 성기를 펼쳐보이며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여 그들에게 대리 섹스를 부탁한다. 바비 인형의 속눈썹처럼 꽃술들을 치켜뜨고 있는 나리꽃만큼 저속하진 않지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초롱꽃에 비하면 내겐 국화의 자태도 너무 되바라져 보인다.

우리가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는 일본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분석한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정작 그들의 국화(國花)인 벚꽃의 깔끔함보다도 국화의 온화함을 더 사랑한단다. 호주 사람들은 어머니날에 카네이션 대신 국화꽃을 선물한다. 하지만 "시들고 해를 넘긴 국화에서도 향기는 난다/ 사랑이었다 미움이 되는 쓰라린 향기여/ 잊혀진 설움의 몹쓸 향기여"라고 읊은 도종환 시인의 '시든 국화'처럼 국화란 꽃은 어딘지 모르게 질척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