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 축구팀이 방한하여 친선 경기를 했다. 실력이 별로 강하지 않으리라는 지레짐작과 달리 하버드대학팀은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팀에 모두 승리를 거두었고,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게는 1-3으로 졌지만 선전했다. 미국은 야구와 풋볼(미식축구), 농구와 아이스하키 같은 스포츠는 강하지만 축구는 즐기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고 수준도 낮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15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축구놀이를 할 때면 아직 룰을 제대로 알지 못해 일부 아이들이 공을 손으로 잡으려 하고 다른 아이들이 "손을 쓰면 안 돼"하고 소리쳤다. 그러던 미국에서 축구가 엘리트층 자녀들의 대표적 스포츠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 축구는 다른 스포츠와 대조적인 특징을 지닌다. 잘 교육받은 학부모들이 볼 때 풋볼은 폭력을 용인·조장하는 경기이고, 야구는 실력 없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농구는 흑인 빈민가 스포츠의 상징이었다. 이에 비해 축구는 그런 사회·문화적 선입견이 없는 백지상태였다. 교육 전문가들은 덜 경쟁적이고 덜 승리지향적인 운동 경기로 축구를 선택했다. 유소년 축구팀은 해마다 선수구성을 완전히 뒤바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다는 성향을 막으려 했다. 이런 스포츠 운영 방식에 중산층이 호응했다. 축구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계층의 대표적 문화지만 미국에서만은―남미 이주자를 제외하면―중산층의 스포츠가 되었다.
사실 미국인 중 상당수는 여전히 축구를 혐오한다. 보수주의적 정치인 중에는 '풋볼은 민주적 자본주의고, 축구는 유럽식 사회주의'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축구 혐오는 곧 미국 문화의 옹호와 연결된다. 야구와 풋볼만이 진정 미국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스포츠라 굳게 믿는 것은 미국이 세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소위 미국 예외주의와 통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축구의 확산은 미국의 고유문화에 대한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반대로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미국의 전통 일변도에서 벗어나 세계와 소통하는 성향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는 완전히 내팽개치고 운동만 하는 특기자, 반대로 운동을 전혀 못하는 많은 우리나라 대학생과 달리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운동을 즐기면서 세계와 소통하고 있는 하버드 대학생들이 부러워 보였다.
(출처-조선일보 2011.06.1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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