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생물의 가계도를 밝히는 생물학 분야를 계통분류학(phylogenetics)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생물의 형태에 관한 정보를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유전자나 아미노산 정보를 가지고 확률적으로 가장 근사한 정도 즉 최우도(最尤度)를 찾아내는 통계 방법을 이용하여 공룡이 진정 새의 조상인지 또는 인간과 침팬지가 언제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려 나왔는지 등을 추정한다.
계통분류학은 어느덧 생물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가 되었지만 이 멋진 진화적 방법론이 생물학의 담을 넘어 다른 분야에 적용된 예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연구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범학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에는 17세기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Little Red Riding Hood)'와 그와 흡사한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전래 동화를 비교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섭섭하게도 이 동화들은 그 기원과 발달 과정에서 한 계통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앞으로 민간설화와 민요의 진화적 연구는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나는 가장 좋은 후보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전래 설화 '콩쥐 팥쥐'의 분석을 제안한다. '콩쥐 팥쥐'와 '신데렐라'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한 바 있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 당나라의 설화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도 실려 있다. 이들은 만일 요즘 발표되었으면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게 분명할 정도로 서사 구조가 흡사하지만 진정 진화의 역사를 공유하는 이야기인지는 계통분류학적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