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짝퉁'으로 불리는 가짜 상품의 거래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의하면 가짜 상품의 국제거래로 인한 피해액이 2005년에는 2000억달러, 2007년에는 2500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온라인 판매나 국내 거래액을 합치면 그 액수는 훨씬 늘어 6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는 가짜 상품 규모를 GDP의 20%인 1조달러로 추산하기도 한다. 허가 없이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제품을 만든다는 뜻에서 '산짜이(山寨)'라 부르는 이런 상품들 중에는 '참일술' '찐라면' '새우짱'처럼 우리나라의 유명 상품을 모조한 것들도 많다.
사실 어느 나라나 경제 성장의 초기에는 외국 기술이나 상표를 도용하는 단계를 거친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서 많은 것을 훔쳐왔다고 하지만, 일본 역시 초기에는 다를 바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침체해 있던 일본 경제가 한국전쟁의 특수(特需) 덕분에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 역시 외국 상표를 많이 도용했다. 한 일본 회사는 유명한 재봉틀 'Singer'를 모방하여 자기 상품에 'Seager'라는 인장을 찍은 후 국내 시장에서는 2만5000엔에 팔면서 외국에서는 1만엔에 싸게 팔았다. 일본 상품이 싸구려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당시 흔히 자국 상품을 미국산으로 속이려 했다. 심지어 규슈 지방의 우사(宇佐)라는 소도시에서 싸구려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자기 물품에다가 '메이드 인 우사(Made in Usa)'라는 라벨을 붙여서 미제(Made in USA)인 양 속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조크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 일본이 미국 상품을 얼마나 많이 베끼려 했는지를 말해준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수력 방적기로 막대한 돈을 벌고 기사 작위까지 받은 아크라이트는 사실 그 기술을 한 무명 발명가에게서 훔친 것이었다. 얼마 후 이 기술은 이번에는 미국으로 유출되어 뉴잉글랜드의 직물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상품을 모방하던 단계를 벗어나서 오히려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우리나라 것을 베꼈다고 하는 일부 상품이 일본 상품의 짝퉁이라는 사실은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확실하게 짝퉁 제조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출처-조선일보 2011.06.17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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