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성대모사 하나쯤 못 하면 연예인으로서 자질을 의심받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가수건 배우건 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의 말투나 노래를 흉내 내기 위해 필사적인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 성대모사에는 조금 재주가 있는 편이다. 학창 시절 나는 쉬는 시간마다 교탁 앞에서 선생님들 흉내를 내던 '달인' 중의 하나였다. 거의 10초 간격으로 "어때?"라는 말을 끼워 넣던 윤리 선생님과 다분히 일본식 발음을 구사하던 영어 선생님 흉내가 내 주종목이었다.
동물행동학자가 된 이후로는 종목을 동물소리로 바꿨다. 나는 강의 도중 서로 다른 종의 귀뚜라미 소리를 비교하거나 온갖 종류의 새 소리 또는 맹수들의 포효 소리 등을 흉내 내어 조는 학생들을 깨우곤 한다. 아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내는 소리는 물개 소리일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나보다 물개 소리를 더 그럴듯하게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의 물개 소리 모사에는 나름대로 필살의 비법이 있다.
새들의 세계에서 성대모사는 종종 출세의 지름길을 열어 준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려는 수컷들은 우선 그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컷이 누구인가를 살핀다. 가장 비옥한 터에서 가장 훌륭한 암컷과 함께 살며 자식들을 여럿 길러낸 수컷을 찾아 그 근처를 맴돌며 그의 노래를 배워 흉내 낸다. 암컷들의 귀에 생경한 신곡으로 승부를 보기보다 나훈아나 빅뱅(Big-Bang)의 후광을 얻으려는 '너훈아' 또는 '오케이뱅(OK-Bang)' 전략을 쓰는 것이다.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추앙받는 몇몇 우리 연예인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인간이라는 동물의 탁월함에 감탄한다. 미국 동부에는 하룻밤에 무려 세 종의 다른 반딧불이 암컷의 발광 패턴을 흉내 내며 짝짓기의 달콤한 꿈을 안고 접근하는 수컷들을 차례로 잡아먹는 '팜므파탈(femme fatale)' 반딧불이가 있지만, 동물들의 모사는 대개 한 가지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전현직 대통령에다 축구해설가, 토론 진행자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물론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 온갖 기계음까지 두루두루 흉내 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인간의 성대는 참으로 기막힌 진화의 산물이다.
(출처-조선일보 2010.11.0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41] 傳說의 계통분류학 (0) | 2013.11.26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14] 미국의 축구 (0) | 2013.11.25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13] 베이비 박스 (0) | 2013.11.23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83] 소통 (0) | 2013.11.23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12] 빗물 (0) | 2013.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