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 W 부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통령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서거로 공직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통합의 정치를 추구해온 2차대전 참전 정치인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94세로 타계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헌사와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미 정부는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날인 5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했고, 연방 정부는 휴무에 들어갔다. 부시 전 대통령의 시신은 4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워싱턴에 도착, 의회 중앙홀에 안치된 뒤 일반에 공개됐는데 수천 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뒤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재선에 실패하는 바람에 ‘단임 대통령’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호칭이 늘 따라 다녔다. 이후 아들 조지 W 부시가 43대 대통령이 되면서 존 애덤스 전 대통령에 이어 미 역사상 2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단임 대통령 이미지는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에 미국이 자만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리더십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소련 붕괴 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움직일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소련이 평화롭게 해체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동서독이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공화당 12년 집권의 피로감에다 1992년 대선 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빌 클린턴에게 패했지만 대선 후에는 “당신의 성공이 미국의 성공”이라며 응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평생 초당파적 통합의 정치를 견지한 바탕은 2차대전 참전 경험 덕분이라고 한다. 적 앞에선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인식 덕분에 정치 이념이 달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은 5일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거행되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지미 카터,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 대통령 부부가 모두 참석한다. 고인의 유해는 장례식 후 휴스턴으로 옮겨져 부시 대통령도서관 내 바버라 여사 묘 옆에 안장된다. 어떤 경우에도 품위와 절제를 잃지 않았던 중도적 보수주의자 부시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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