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8.12.06. 14:30
이현종 논설위원
‘만약 ○○○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기자회견을 했더라면 기자회견을 통하여 국민이 궁금해하거나 답답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귀찮아했고 비서진은 기자회견을 두려워했다.… 국민과 고절(孤絶)돼 있을 때 정치가 잘 될 리 만무하다.’ 여기에 나오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4·19혁명으로 하야(下野)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칭한다. 이 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거를 거쳐 정식 취임한 뒤 이듬해인 1964년 2월 17일 자 동아일보 사설의 일부로, ‘관훈저널 2015년 봄호’에 소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어느 대통령의 이름을 대입해도 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통령은 바뀌어도 기자회견 문화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오른 뉴질랜드행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회견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기자들이 경제 현안과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문 대통령은 “사전에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국내 문제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문을 막아버렸다. 기자들이 두 번 더 질문했지만 문 대통령은 “더 말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며 질문과 상관없는 북핵 이슈 답변만 했다. 껄끄러운 질문을 하는 것은 기자의 기본적 책무이다. 물론 문 대통령도 답변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러나 질문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문제다. 기자는 홍보비서관이 아니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수시로 기자회견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가진 공식 회견은 단 5회로 월평균 0.27회에 불과하다. 언론은 대통령과 국민의 매개체이고, 기자회견은 핵심 수단이다. 대통령 태도가 그렇다면 국민은 경제 문제 등 궁금증을 도대체 누구에게 풀어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싸우더라도 질문에 답은 한다. 지난달 7일 1시간 27분 동안 진행된 회견에서는 혼자서 100개가 넘는 질문을 받아 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평균 매월 6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야 첫 기자회견을 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후반기로 갈수록 기자회견을 꺼렸다. 기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국내 현안을 마음껏 질문할 날이 오기나 할까. 불통(不通) 소리가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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