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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여성들은 아무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바람아님 2018. 12. 12. 17:37

(조선일보 2018.11.24 이해인 기자)


'삶은 계속된다'삶은 계속된다

루트 클뤼거 지음|최성만 옮김|문학동네|384쪽|1만5000원


'가스실의 고통 속에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밟고 오른다.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보면 남자들 시체는 늘 위에, 여성과 아이들 시체는 맨 아래에 있었다.'


1931년에 태어나 나치가 지배한 암흑 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낸 저자가 반세기 만에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 냈다. 유대인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바닥에 깔려야 했던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서술한 증언 문학이다.


피해자에 관한 통념을 깨뜨리는 일상적 경험들을 기록한다. 어머니와 함께 전차를 타고 가던 때였다.

누군가가 어린 소녀(저자)의 손에 오렌지를 쥐여줬다. 동정심을 표하고 싶었던 낯선 어른은 유대인 별을 단 소녀를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자는 이런 동냥이 "달갑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호의를 베푸는 건 약자의 처지를 바꾸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한 살에 끌려갔던 수용소 생활은 치욕스러웠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가장 값싸고 저급한 노동력이었다.

숲을 개간하고 철도 레일을 나르다가도 민간인의 집에 끌려가 잡다한 일을 해야 했다.

수용소의 여성들은 아무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끔찍한 현실은 지금도 이어진다.

뮌헨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마리엔 광장에서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수용소에 가서 막사들을 둘러본다.

'이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선 안 돼'라며 묵념한다.

그들이 위로하는 것은 죽은 자들일까 아니면 그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마음일까.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의 일부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가해자의 언어로 써야 한다”
처음에는 아이의 시선으로, 다음에는 여성의 시선으로
무엇보다 가해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쓴 생존자의 자서전


현재 시점의 그녀는 독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운 채, 오십 년 전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그가 일곱 살 때 유대인은 공원 벤치에 앉는 것이 금지되었다.

빵을 사러 가게에 편히 가지도 못했고 영화관에도 갈 수 없었다.

열한 살 때 고향에서 추방되어 체코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로 압송되었다.

이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폴란드 크리스티안슈타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갇혀 지냈다.

1945년 초 어머니와 언니와 극적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클뤼거는 인간의 존엄성을 습득하는 대신

멸시와 학대와 굶주림과 갈증에 적응해 살았다.


열두 살 때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에 있었다.

당시 그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증언할 가치가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인번호 A- 를 팔에 새겨야 했고, 발가벗은 채 죽은 이들이 담긴 트럭이 한 번씩 눈앞에서 지나갔다.

날마다 한참을 서서 점호를 받았다. 신체적 불편함은 끝이 없었고 그래서 지루했다.

어느 순간 열다섯 살 미만의 아이들은 전부 가스실로 끌려갔다. 그는 순전히 우연히 살아남았다.


저자는 이렇게 (1) 반유대주의적 분위기가 극에 달한 빈에서 보낸 유년 시절,

(2) 고향에서 쫓겨나 체코와 폴란드 강제수용소에 갇혀 지낸 소녀 시절,

(3) 극적으로 탈출해 숨어 살다 독일 바이에른에 당도한 전쟁 말기,

(4) 미국 이주 뒤 살아온 젊은 날 등을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때 전쟁과 강제수용소의 잔인하고 참담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현장과

여자아이가 받은 부당한 대우, 유대인 사회의 여성차별 사례 등을 솔직하고 통렬하게 펼쳐놓는다.


이 책은 중요한 기록물로 손꼽히지만 기록적 가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가로서 발휘한 언어 감각도 눈부시다.

저자는 국가폭력이 지금과 이후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헤엄치듯 떠밀어내듯 말을 움직여

독자의 상상력을 건드리고 이해의 폭을 넓힌다. (분노와 공포를 소화하지 못한) 아이의 시선과 (성장하면서 깊어진)

통찰이 이런 기법에 힘입어 맞물려가면서, 읽어갈수록 더 큰 울림과 더 예리한 사유를 전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을 독일어로 썼다.

열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독일어를 거의 쓰지 않았지만, 이 회고록은 가해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제수용소에 관한 책은 주로 헝가리어, 폴란드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집필되었고,

독일어로 집필된 것은 의외로 드물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심이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가해국의 독자들에게,

귀를 닫지도 장벽을 세우지도 말고, 이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것을 간절하고 단호하게 요청한다.


화해와 용서를 입에 쉽게 올리지 않고
피해자의 메시지에 응답하는 한 가지 방법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지 십사 년 뒤인 2016년 1월 27일, 루트 클뤼거는 독일정부의 초청으로 연방의회의 나치 희생자

추념행사 자리에 참석해 기념연설을 진행했다. 이차대전 당시의 나치 강제수용소, 특히 여자 수감자들이 겪은

성적 착취에 대해 담담히 회고한 그는, 오늘날 독일 정부의 난민수용정책을 놀라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초청에 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 몇 달 전 메르켈 총리가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홀로코스트 광대”라는 (역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임레 케르테스의) 자조적 표현에 적극 동조할

정도로 홀로코스트 추모문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던 그가 추념행사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자신의 염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십 년 전 그토록 간절하게 전한 한마디 한마디가 가닿았다는 안도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다만 클뤼거의 연설 수락이 곧장 독일인들과의 화해나 그들에 대한 용서로 이어진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가 이 책에서 다룬 단절과 모순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혐오의 조짐들을 놓친다면 그런 일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클뤼거와 오랜 시절 우정을 나눴던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가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 2002년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클뤼거는 이때 발저와 관계를 중단한다.)


고집스러운 항의이자 사유를 일깨우는 통찰인 『삶은 계속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문학의 탁월한 방식을 만나고, 그 여정에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더불어 홀로코스트 추모문화에 피로를 느끼는 동시대인들과 그 의례적인 문화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관들 틈에서 폭력의 경험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 피해 경험을 말한다는 것,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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