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氣칼럼니스트/강천석칼럼

[강천석 칼럼] '대통령을 보호하라'

바람아님 2018. 12. 23. 10:03

조선일보 2018.12.21. 23:30

 

前職 대통령들 불행 보고도 '우리는 DNA 다르다' 할 건가
罪와 罰 다는 저울.. 불공정하니 세상 험악해져
강천석 논설고문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는 며칠 전 수요일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았다. 올해 여든넷의 김 목사는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 구치소 면회 나들이를 계속해왔다. 이번 주에도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구약성경 신명기 8장을 함께 읽고 찬송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다. 그에게 형제 이외의 면회객이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인터넷에 전(前) 대통령 관련 소식이 새로 떴다. 하나는 서울시 세금징수과 기동팀 14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3시간 동안 수색해 TV·냉장고 등 9점을 압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중앙지검 요청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공매(公賣)에 부쳤다는 소식이다. 또 한 명의 생존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극히 좋지 않은 건강 상태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다.


전직 대통령의 현황(現況)이 한국 정치의 현황이다. 그들의 병(病)이 나라의 병이다. 독재의 사슬을 깨뜨리고 가난의 족쇄(足鎖)를 벗어났다지만 역사의 톱니바퀴 사이에 말려드는 한국 대통령들의 불행에는 끝이 없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치소나 교도소에 두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브라질밖에 없다. 역사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역사가 출발선에서 결승선(決勝線)을 향해 나아간다는 진보 사관(史觀)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란 시작도 끝도 없이, 진보도 퇴보도 없이 그저 돌고 돌 뿐이라는 순환(循環) 사관이다. 되풀이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은 과거에 그리됐듯이 미래에도 한국 대통령들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 정치의 가장 급한 과제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받아야 마땅한 벌(罰)을 면(免)해 주자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마성(魔性)에 휘둘려 죄(罪)의 진창을 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 자리는 대통령만 되지 않았더라면 감옥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을 사람마저 끝내 감옥에 보내고 마는 그런 자리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헌법을 고쳐야 한다. 2년 전 촛불 앞에서 국민 대부분은 그에 관한 합의에 도달했다. 대통령이 독점하고 있는 인사권이 법원·검찰·경찰·감사원·국정원·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모든 권력기관을 줄을 세워 대통령 지시를 하청(下請)받는 기관으로 만든 근본 원인이라는 데 이의(異意)가 없었다. 대통령들의 불행이 여기서 비롯됐다는 공동 진단이었다. 헌법과 제도를 그대로 둔 지금 나라 사정이 어떻게 됐는가. 이 마당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DNA가 다르다'며 충성심을 뽐내는 인간은 대통령의 등을 낭떠러지로 떠미는 불충(不忠)한 사람들이다.


권력이 자신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 관용이다. 옛날 옛적에도 시장의 저울이 공정하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그럴진대 죄(罪)와 벌(罰)을 다는 사법과 수사의 저울이 내 편에게만 후(厚)하고 네 편에겐 일방적으로 박(薄)하다면 세상이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군인 가족 분들껜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군인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죽을 곳에서 죽어 나라를 지켜달라고 키우는 사람들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100m도 채 안 되는 길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손에 꼭 수갑을 채워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면 법무장관이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보라. 적개심(敵愾心)은 내 눈을 먼저 멀게 할 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원 폭로에 '미꾸라지'를 끌어들인 것은 보통 불감증(不感症)이 아니다. 앞 정권은 '지라시'라는 말로 망했다. 지라시에서 탄핵까지 지척(咫尺)이었다. 미꾸라지는 3급수(級水)에 산다. 흐리고 탁해 공업용수로나 쓸 수 있는 물이다. 미꾸라지가 사는 곳이라면 청와대가 3급수 연못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쁜 정치는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국민의 단점을 부추긴다. 영국병(病)을 앓던 1970년대 영국인들은 나라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인물로 석탄노조위원장을 꼽았다. 그러고 얼마 안 지나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우리는 너나없이 절제(節制)에 약하다. 정치가 그걸 부추기고 있다. 4·19 이후를 떠올릴 만큼 이익집단 요구가 폭발하고 있다. 한국 국민들에게 나라를 움직이는 가장 힘센 인물을 꼽아보라고 해보라. 민노총 위원장 말고 누가 있겠는가. 나라 곳간은 갈수록 비고 감옥은 이미 차서 넘친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