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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05] 순서 주고받기

바람아님 2019. 1. 16. 09:38
조선일보 2019.01.15.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문화인류학자 김정운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소통이 독특한 것은 바로 순서 주고받기(turn-taking) 덕택이란다. 일방적으로 혼자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상대의 순서를 존중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세상 모든 문화권에서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우르르 까꿍' 놀이가 바로 순서 주고받기 훈련이다.


김정운 박사는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타인의 순서를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 위대한 인간의 아성도 바야흐로 무너질 참이다. 일본원숭이 암컷 15마리의 대화를 분석한 도쿄대 영장류학자들의 최근 연구 결과가 주목을 끌고 있다. 총 64회의 음성 신호 교환에서 한 원숭이의 말이 끝난 후, 다음 원숭이가 이어가는 데 걸린 시간이 평균 0.25초로 측정되었다. 이는 대화 간 멈춤 시간이 0.2초인 인간에 가장 근접한 수치로서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 중 제일 빠르다.


대화 간격이 짧다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2013년에도 프린스턴대 영장류학자들이 마모셋원숭이의 대화를 분석해 서로 순서를 주고받는다는 결과를 보고했으나 그 간격이 3~5초나 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에 비하면 일본원숭이의 대화는 정해진 패턴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대화 형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원숭이가 평소 예의 바른 일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배워 특별히 조신하게 구는 게 아니라면, 앞으로 다른 영장류에서도 비슷한 관찰 결과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순서 주고받기 규칙이 무너져 내려 뒤죽박죽이 되면서 사람들이 분노를 참지 못해 상당히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순서 주고받기는 대규모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들에게 특별히 필요한 속성인 듯싶다. 영장류뿐 아니라 개미와 꿀벌 사회의 대화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