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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07] 식물도 듣는다

바람아님 2019. 1. 30. 16:06
조선일보 2019.01.29.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벼는 농군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이 있다. 모내기만 해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논을 둘러봐야 뜬묘나 병충해도 찾아내고 물도 제때 빼고 댈 수 있어 벼가 잘 자란다는 말이다. 그런데 벼가 실제로 농군의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꽃이나 과일을 재배하는 사람들 중에는 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훨씬 더 고운 꽃이 피고 열매도 많이 달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학계의 검증을 거친 연구가 별로 없어 그저 흥미로운 얘깃거리였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이 달맞이꽃에서 꽃가루를 옮겨줄 벌이 다가오면 순간적으로 단물의 당도(糖度)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흡사 위성방송 수신 접시 안테나처럼 생긴 달맞이꽃의 꽃잎은 벌의 날갯짓 소리를 포집해 꽃부리 속으로 내려 보낸다. 연구진은 실내에서 달맞이꽃을 기르며 실험을 진행했다. 유리통 안에 넣어 공기 진동을 차단한 꽃과 벌의 소리를 녹음해 들려준 꽃을 비교했더니 후자의 단물 당도가 12~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꽃에서는 꽃 속 깊숙이 있는 단물을 빨아먹으려 벌이 비집고 드나드는 과정에서 암술과 수술을 문지르며 꽃가루가 옮겨진다. 그러나 호박벌처럼 제법 몸집이 있는 벌들은 강력한 날갯짓으로 수술을 흔들어 꽃가루를 떨어뜨린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며 나는 어쩌면 식물이 능동적으로 벌의 몸 위에 꽃가루를 뿌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리는 공기나 물 등 다양한 매체의 진동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진동을 감지(感知)할 수 있는 장치만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귀로 듣지만 동물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소리 감지기관들이 있다. 식물이라고 듣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식물은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일지도 모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