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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10] 사진 한 장의 힘

바람아님 2019. 2. 27. 08:31
조선일보 2019.02.26.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뉴기니섬과 호주 북부 열대우림에는 정자새(bowerbird)가 산다. 모두 20종이 알려져 있는데 크기는 얼추 직박구리만 하다. 이들의 짝짓기 행동은 동물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기이하다. 수컷은 나뭇가지를 모아 기둥 또는 통로 모양의 정자(bower)를 짓고 암컷을 기다린다. 놀라운 것은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화려한 물건들을 가져다 정자를 장식한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수컷마다 제가끔 자기만의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듯 한 가지 색으로만 장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꽃잎, 깃털, 열매, 조개껍데기 등으로 장식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밝은 색의 플라스틱이나 병 조각을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미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하러 열대 오지로 달려간 생물학자들은 느닷없이 인간이 만든 물건을 수집해오는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적이 찜찜해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예 플라스틱을 먹는 고래와 앨버트로스를 보며 좌절한다. 세계적인 환경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의 사진전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Intolerable Beauty)'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잘나가던 변호사 업을 접고 벌써 15년 넘게 세계를 돌며 환경 파괴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배 속 가득 형형색색 플라스틱을 삼킨 채 죽은 앨버트로스 사진 한 장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앨버트로스'에는 애써 모아온 플라스틱 조각들을 새끼에게 게워 먹이는 어미 앨버트로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앨버트로스의 진화사에서는 바닷물에서 건져 올린 것들은 모두 몸에 좋은 먹이였다. 그들은 플라스틱이 뭔지 모른다.

개막식에서 만난 그는 DMZ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248㎞를 한가운데로 종단하며 분단의 역사와 자연이 함께 빚어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싶단다. 조만간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 그런 날이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