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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08] 황금 돼지의 해

바람아님 2019. 2. 13. 09:32
조선일보 2019.02.12.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2월 말이나 1월 초에 새해 상징 동물에 관한 글을 썼다가 힐난을 들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글은 설날에 즈음해서 써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몇 차례에 걸친 책망에도 고치지 못하다 이번에야 제때 쓴다. 바야흐로 기해년 황금 돼지 해가 밝았다.

생물학자들 관찰에 따르면 돼지는 결코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이 아니다. 훈련하지 않아도 알아서 잠자리와 뒷간을 가린다. 돼지는 멍청하지도 않다. 웬만한 개 못지않은 지능을 지녔다. 그리고 체지방지수가 15% 정도로 인간 여성 평균보다 낮아 뚱뚱해 보일 뿐 보기보다 비만 체질도 아니란다.

그런데 나는 돼지에 대해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다. 돼지를 뜻하는 한자는 12간지에서 돼지를 나타내는 해(亥)를 비롯해 가축으로서 돼지를 의미하는 돈(豚), 집에서 기르다 제사상에 올린 돼지를 상형한 시(豕), 멧돼지를 뜻하는 저(猪) 등 무려 20개가 넘는다. 이른바 육축(六畜) 중에서 말과 염소의 한자는 마(馬)와 전(猠) 하나씩이고, 소와 닭은 각각 우(牛)와 축(丑), 계(鷄)와 유(酉) 둘씩이다. 개를 뜻하는 한자로는 견(犬), 구(狗), 술(戌), 오(獒) 네 개가 주로 쓰인다. 돼지는 도대체 왜 이리도 많은 한자를 지니게 됐을까?

돼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돼지해에 태어나면 복을 타고난다는 속설도 있고, 돼지꿈을 꾸면 돈이 꼬인다며 복권을 사기도 한다. 예로부터 다산의 상징이라 역시 황금 돼지의 해였던 2007년에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1.25까지 올랐다. 그런가 하면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게 낫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악담이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에서 보듯이 돼지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표상이다. 나는 어쩌면 이 다양한 개성이 그 옛날 중국 사람들로 하여금 돼지를 한마디로 묘사할 수 없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할 것 같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