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 양쪽 끝으로 무기를 든 병사들이 켜켜이 서 있다. "돌격하라"는 명령에 서로를 향해 전력질주하더니 이내 한데 뒤엉켜 창과 칼을 마구 휘두른다. 팔과 목이 잘려나가고 유혈이 낭자하다. '브레이브하트'나 '적벽대전' 같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전투 장면이다.
내일이 경칩이니 이제 곧 개미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겨우내 흐트러진 국경을 바로잡다 보면 종종 이웃 나라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개미들의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름이 없다. 최첨단 병기를 이용한 폭격 위주의 전투가 아니라 우리가 한때 즐겨 하던 전면전 방식을 고수한다.
그런데 전투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이면 정작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돌아다니는 개미가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서 곧장 집으로 내달린다. 바로 연락병 개미다. 아군의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후방으로 달려가 지원군을 요청한다.
의무병 개미도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흰개미를 전문적으로 공략하는 마타벨리 개미(Matabele ant)는 부상당한 동료를 내버려두지 않고 후방으로 후송한다. 또 다른 무리의 개미들은 후송된 개미들의 상처 부위를 핥아준다. 그저 상처 부위를 씻어내는 것인지 항생제를 발라주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구조되지 않은 개미는 24시간 안에 80%가 사망하는 데 반해 치료받은 개미의 사망률은 10%로 줄어든다.
개미 전쟁과 인간 전쟁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개미학자들이 개미 전쟁을 관찰한 지가 족히 100년도 넘었건만 아직 아무도 '소대장 개미'를 찾지 못했다. 잠언 6장 7~8절에는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했지만 심지어 전장에도 "돌격하라"와 "퇴각하라"를 외치며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장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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