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해지는 걸 보니 봄이 오나 보다. 나는 평생 낮잠이란 걸 자보지 못했다. 잠자는 시간을 '동굴 속 원시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아까워했던 에디슨의 충고 때문은 아니다. 낮에 졸음이 와도 막상 눈을 붙이려면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어쩌다 어렵게 낮잠을 자고 나면 오히려 몸이 찌뿌듯하다.
낮잠이 건강에 좋다는 의학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2007년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은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30분 이상 낮잠을 자는 사람은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무려 37%나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캐나다와 미국 등 북미 사람들에 비해 낮 12~오후 3시를 아예 시에스타 타임(Siesta time)으로 정하고 매일 낮잠을 즐기는 중남미 사람들의 심장질환 발병률이 훨씬 낮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미국심장병학회에 따르면 달콤한 낮잠은 거의 혈압약 수준의 효과가 있단다. 저용량 고혈압약은 혈압을 5~7㎜Hg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고, 금주와 저염식의 효과가 3~5㎜Hg로 알려져 있다. 낮잠의 혈압 강하 효과를 실제로 측정해보니 평균 5㎜Hg나 되는 걸로 나타났다.
"무교동 왕대포집에 가서/ 팁을 오백원씩이나 주어도/ 도무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글자 하나 때문에 속을 끓이다 끝내 '낮잠이나 들까나' 하신 서정주 선생은 글자 찾기를 포기하신 게 아니었다. "마음을 정화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낮잠은 심혈관 질환에만 좋은 게 아니라 두뇌 건강에도 좋다.
어차피 하루가 다르게 아열대화하는 마당에 우리도 낮잠을 권장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면 어떨까? 그런데 내가 왜 또 사회운동가 흉내를 내고 있나? 남 걱정 집어치우고 우선 나부터 즐기자. 평생 중남미 열대 국가를 드나들며 그렇게도 사고 싶었던 해먹(hammock)부터 하나 장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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