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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04] 동물계의 우사인 볼트

바람아님 2019. 1. 10. 09:28
조선일보 2019.01.08.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글쓰기를 워낙 좋아해 부단히 쓰다 보니 어느덧 저서, 역서, 편저, 공저를 다 합해 100권이 넘는다. 내 첫 책은 199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두 권의 영문 서적이었다. 우리말로는 그보다 2년 후인 1999년에 출간한 '개미 제국의 발견'이 첫 책이다. 이 책이 올해 출간한 지 20년이 되어 지금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개미에 관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제법 꼼꼼하게 다뤘다고 생각했는데 인쇄소로 넘어가기 전에 급히 수정해야 할 게 생겼다. '개미 제국의 발견' 초판에 나는 그동안 우리가 가장 빠른 움직임을 자랑하는 동물이 높이뛰기 선수인 벼룩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턱을 다물어 먹이를 잡는 덫개미라는 사실을 소개했다. 벼룩이 튀는 데 1000분의 0.7~1.2초가 걸리는 데 비해 덫개미가 턱을 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00분의 1초에서 1000분의 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스미스소니언연구소는 덫개미보다 세 배로 빨리 턱을 닫는 드라큘라개미를 '동물계의 우사인 볼트'로 등극시켰다. 이는 시속 320km가 넘는 빠르기로 눈 깜짝하는 사이에 턱을 무려 5000번이나 여닫는 셈이다. 드라큘라개미는 원래 자기가 돌보는 애벌레나 번데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체액을 빨아먹는 습성 때문에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얻으며 유명해졌는데 이번에는 뜻밖에 빠른 동작으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드라큘라개미가 동물 올림픽 속도 경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챔피언 자리를 고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슷한 방식으로 먹이를 사냥하는 병정 흰개미들도 막강한 후보들이다. 척추동물로는 시속 300km를 웃도는 속도로 먹이를 향해 하강하는 송골매도 훌륭한 경쟁자다. 물속에 사는 말미잘이나 해파리 같은 강장동물의 가시세포가 독침을 발사하는 속도도 만만치 않다. 자연계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세계가 아직 무궁무진하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