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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82] 응답해야 사랑이다

바람아님 2019. 1. 19. 12:02

(조선일보 2019.01.19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배울 게 많은 한 선배가 인간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가,

얼마 전 알게 됐다는 지인의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받아 적고 싶을 만큼 주옥같은 말을 내뱉던 그 선배의 특징은 웬만해선 남의 일을 묻지 않는다

점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오늘은 뭐 먹었니? 같은 아주 사소한 질문들 말이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쉽게 지친다. 소통이란 일방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선영의 책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를 읽으며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말은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그녀가 몸으로 느꼈던 '모성은 발생하는 게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사랑은 응답이고 응답의 축적이 곧 모성이다. 모성은, 그리고 부성도, 결코 본능이 아니다.

책임감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sponsibility(책임)가 response(응답)와 ability(능력)의 결합으로 이뤄진

합성어라는 사실은 절묘하다."


입시전쟁을 그린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건 명문대 진학이라는 폭주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창문을 열고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가령 "엄마, 나도 잘하고 싶은데, 힘들어~"라고 말하는 아이를

침대에서 끌어안으며 "엄마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 이게 맞나 싶은데도 답이 없잖아….

아들, 엄마가 미안해"라고 고백하는 순간 말이다.

아들 포기 선언 후 가출했던 아이를 양말 바람에 뛰어가 껴안는 아빠의 뒷모습 같은 것 말이다.


엄마가 엄마 노릇이 처음이듯 아이도 그렇다. 모두가 처음인 우리는 그렇게 사람 되는 법을 서툴게 배워 나간다.

상대의 안색에서, 목소리에서 기미를 포착하는 공감을 배우면서 말이다.

누구나 화려한 성공을 꿈꾸지만, 기적은 나팔꽃이 장미로 피어나는 게 아니다.

삶의 기적은 꽃 몽우리가 터져 나팔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외치고 있었으나 듣지 못하던 아이의 말에, 엄마가 끝내 응답하던 순간, 학부모는 끝내 부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