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1.23. 00:23
열정과 경륜 갖춘 예비 작가들 지원할 방법은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문학이 꿈이었다, 40년 만에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신 전 의원은 1952년생이다.
재작년에는 송호근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이 첫 소설 『강화도』를 발표했다. 당시에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였다. 『강화도』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무신이자 외교관 신헌의 삶을 다뤘다. 이 책은 출판인들과 영화인들이 만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북투필름’ 행사에서 소개돼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송 교수는 이 소설을 내고서 “40년 동안 가슴에 담아온 문학에 대한 꿈을 이뤘다”며 뿌듯해했다. 지난해에는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김사량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송 교수는 1956년생이다.
이것이 일종의 신호탄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2010년대 일본 문학계에서는 60, 70대 신인 소설가들이 연달아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장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은 상당수가 10~15년 뒤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가. 그 말은 곧 한국에서도 60, 70대 신인 소설가들이 우르르 나온다는 얘기 아닐까.
2012년 군조(群像)신인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지사키 가즈오는 1938년생이다. 그는 학습지 편집장과 영어 강사로 일하다 65세부터 소설을 썼다. 역시 2012년에는 당시 61세였던 기리에 아사코가 쇼가쿠칸(小學館)문고 소설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2013년에는 75세의 구로다 나쓰코가 『ab산호』로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도 평범한 주부였던 1954년생 와카타케 치사코가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그녀는 55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문학에 대한 열정도 60대가 20대보다 더 강할지 모른다. 아이돌그룹도 유튜버도 없던 시절, 지금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문학을 말하고 꿈꿨다. 글쓰기에 엄청난 체력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인생 경험과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음악, 수학, 바둑과 달리 소설에서는 성인 전문가를 압도하는 소년 천재가 없다.
늦깎이 소설가들이 몰려온다면 대환영할 일이다. 우선 문자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 세대의 기억에 쌓여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록하지 못한 사건, 말할 수 없었던 사연이 넘쳐날 터다. 꼭 한국 현대사 얘기가 아니더라도 좋다. 경륜과 통찰이 담긴 서사가 그렇게 찾아온다면 경박단소 경향이 심해지는 한국 소설계에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으리라. 한 세대 가까이 ‘젊은 감각’을 쫓다 한국문학이 놓친 바도 적지 않다.
아쉽게도 글을 훈련하고 발표할 기회와 공간이 부족하다. 출판 환경도 나이 많은 저자에게 썩 우호적이지 않다. 공모전 위주로 신인을 발탁하는 한국문학 풍토를 고쳐야 하고, 예비 작가들이 스스로 돌파해야 할 지점도 있다.
다만 몇 가지 우회로는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나이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신인문학상이나 좀 더 원숙한 분위기의 웹소설 플랫폼, 전문 매체, 글쓰기 강좌 등이다. 일본에서는 110년 역사의 대형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미스터리문학상을 만들었다.
공익적 가치가 충분하고 큰돈이 들 것 같지도 않은데 국가 예산으로 그런 사업을 지원하면 좋겠다. 긴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발전한다. 이해와 성찰의 총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므로. 반대로 사람들이 한 줄짜리 댓글에 몰두하는 사회는 얕고 비참하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옛 문청들께 글쓰기를 꼭 권하고 싶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이제는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행복하게 글을 썼다.” (신기남 소설가)
“소설을 쓸 때 나만이 느끼는 희열 같은 게 있다. 사실 소설 쓸 때가 제일 행복하다.” (송호근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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