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연금에 하달된 대통령 지침
조선비즈 2019.01.24. 10:01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관여할 수 있을까. 24일 오전에 만난 김수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있다고 해도 (CPPIB가)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며 "주주로서의 활동은 CPPIB 고유의 권한"이라고 했다. CPPIB는 최고경영자를 선임할 때도 정부가 일체 참견할 수 없는 걸로 유명하다. 정부 인사는 이사회 근처에도 못 온다. 모두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한 조치다.
CPPIB와 비슷한 조직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어떤가. 일단 공단 이사장부터 여당 정치인이다. 기금운용본부장(CIO)은 공단 이사장 위에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승인해줘야 뽑을 수 있다. 복지부 장관은 그 위의 대통령이 택한 인물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상명하복(上命下服)만 존재할 뿐이다. 툭하면 "독립성·투명성 강화"와 "국민신뢰 회복"을 외치는 국민연금의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도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맡는 것도 모자라 4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들은 매 회의 침묵하거나 아예 불참하다가 표대결을 할 때만 정부 원하는 쪽으로 손을 든다. ‘적폐’로 찍힌 경제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진작에 위원 자리에서 쫓겨났고, 작년부터는 현 정권 최고 실세인 참여연대가 기금위에 합류해 회의 분위기를 주무른다.
이 정도만 나열해도 재계가 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과 주주권 행사를 순수한 의도로 보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독립성 보장은커녕 스튜어드십코드를 특별 사면권이나 긴급 명령권 같은 대통령 권한으로 여기는 듯한 발언이다. 기업들이 "한진그룹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며 불안에 떠는 게 당연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자체를 반대한 이는 없었다. 자본시장 발전에 꼭 필요한 절차라는 걸 모두 안다. 다만 기업 길들이기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정부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다.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이 정부는 듣는 척도 안 한다. 오히려 대통령은 보란 듯 노골적으로 국민연금에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이제 명령이 떨어졌으니 기금위와 장관·이사장·CIO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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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규제 혁신 한다더니 경영권 흔들 新규제 꺼낸 文대통령
문화일보 2019.01.24. 11:50
대기업을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가 1주일여 만에 다시 돌변했다. 문 대통령은 23일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틀린 것은 바로잡고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며 고강도 규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15일에는 대·중견기업 기업인들을 초청해 “기업이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올해 정부의 목표” “기업들이 신바람 날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당시 기업인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런 말을 믿고 여러 건의를 했지만, 이번 발언으로 문 대통령 진의는 선명해졌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차관 4명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전문성 없는 여당 의원 출신이다. 외국 사례와 달리 정치적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한 구조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만 293개에 이르고, 여기엔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국내 주력기업이 대거 포함돼 있다.
대통령이 직접 사기업 경영에 개입할 의지를 피력한 것은 연금사회주의로 빗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날 앞서 열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는 대한항공 경영 참여에 대해 위원 다수가 반대했지만, 문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결론을 뒤엎었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국민연금의 ‘코드 투자’ 위험성을 말해준다.
문 대통령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조속한 국회 의결도 주문했다.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이사회가 투기자본에 장악될 수 있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주회사·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 투자보다 지분 정리 등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15일 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속도 조절을 요청했는데, 그 답변인 셈이다. 규제 혁파는커녕 대주주 발을 묶고, 경영권을 흔들 신(新)규제를 덧붙이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와 기업의 앞날이 더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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