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 “무조건 빌리언” 방위비 분담금 압박
[중앙일보] 2019.01.23 01:40“밀리언은 안 된다는 게 트럼프 뜻”
미국 측 사실상 마지노선 제시
“한국 더 안 내면 미군 철수 입장”
한국의 부담금은 1조원을 훌쩍 넘겨야 한다는 미국 측 마지노선을 통보한 셈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미국 당국자의 발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2017년 체결된 방위비분담금 협정에 따라 지난해 한국이 부담한 금액은 100만 달러 단위인 830만 달러(약 9602억원)다. 한국 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이 1조원 선을 넘기면 곤란하다는 입장으로 협상에 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미국 정부 당국자는 다른 한국 측 인사에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더 내든지, (주한미군을) 우리가 빼든지(Either they pay or we pull out)’라는 입장이 강경하다”며 “우린 입장을 정했고, 협상 여지는 없다”고도 알렸다. 이는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최종적으로 결렬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예고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10차 한·미 방위비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미국 측이 분담금을 10억 달러 단위로 올리면서 협정 유효기간도 현재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협상은 이에 따라 한·미 외교 당국 간 실무진의 손을 떠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당국자가 한국 측에 ‘액수 마지노선’을 거론한 게 알려지면서 미국 정부가 향후 주한미군 감축을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지게 됐다.
특히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독려하는 보상으로 주한미군 감축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미국 측이 미 본토를 타격권으로 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요구하면서 연합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감축을 상응조치로 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주한미군) 철수를 바란다”고 한 뒤 “(철수가) 지금은 아니다”고 해 여지를 남겼다.
미국의 압박이 커지면서 청와대는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의제로 올리며 매주 점검 중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직접 만나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설득하려 했지만 차질이 빚어졌다. 강 장관은 다보스포럼(23~25일)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는데 미국의 셧다운(연방정부 업무 일시정지) 사태로 폼페이오 장관이 다보스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강 장관은 지난 21일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 통화로 협의를 대신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남정호의 시시각각] '미군 감축' 긴장감 없는 현 정부
일본과의 분쟁도 악재로 작용해
왜 이름조차 생소한 4자동맹을 주목해야 하나. 미국 입장에선 4자동맹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쪼그라드는 탓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그간 ‘축-바큇살(hub-spoke) 전략’을 펴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바큇살처럼 한국·일본·대만·호주·싱가포르 등 우방국과 양자동맹을 맺어 동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전략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돌연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개념을 들고나와 안보 구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미·일·호·인 4자동맹국을 잇는 새 안보 축이 떠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대접받던 한국은 졸지에 안보 변방으로 전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요즘 외교·안보 전문가 사이에선 ‘신(新) 애치슨라인’이란 말이 망령처럼 떠돈다. 애치슨 라인은 1950년 미 국무장관이던 딘 애치슨이 밝힌 극동방위선이다. 당시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방위선 안에 남한은 포함되지 않았다. 남침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정책으로 북한이 믿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불길한 애치슨 라인이 새삼 거론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곳곳에서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우며 대놓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가뜩이나 빼고 싶은 판이라 그럴듯한 핑계만 생기면 당장이라 불러들일 게 뻔하다.
더 심각한 건 주한미군이 줄면 보병 전투부대가 빠진다는 거다. 현재 미 2사단 제1여단 소속 4500명은 9개월 순환 근무 원칙에 따라 오는 7월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 올 예정인 새 부대를 안 보내면 자연스레 감축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일본과의 소모적인 분쟁도 미군 감축을 부추길 악재다. 일본은 그간 주한미군 철수를 누구보다 강력히 반대해 왔다. 물론 한국이 아닌 자신들의 안보 때문이다. 일본으로선 주한미군 철수 시 대한해협이 북한을 상대할 최전방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6월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자 오도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이 즉각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에 전화를 걸어 “그대로 두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랬던 일본 분위기가 확 변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가정해 놓고 일본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경우가 늘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려 해도 일본이 발 벗고 나서서 말리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일본과 끊임없이 각을 세워온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본의 수수방관 속에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이 갑자기 이뤄질 가능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주한미군 철수도 언젠가는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지금은 아니다. 이런데도 현 정부는 위기를 느끼는 기색도 없다.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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