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26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예술가는 뭐가 매력인거죠, 언니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후배가 종종 들어가는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 한 작은 소동이 있었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나간 블라인드 소개팅. 만나고 보니 시인이었다죠.
소개팅 나간 여성이 처음 들었던 생각은 '오늘은 망했구나'.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세계관이 흔들리더랍니다.
외모도 평범에 미달하고, 집안이나 재산은 남부러워해야 할 처지의 상대인데,
기묘하게도 얘기를 들을수록 끌리더라는 고백이었죠.
그리고 커뮤니티에 물었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돼 버린 거죠, 언니들?"
세속적 가치관이 체화된 대부분의 '언니들'은 물론 그녀를 타박 놓았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게 아니라, 매혹은 짧고 인생은 길다면서요.
하지만 개중에는 옹호도 있었죠. 그중 장난스러운 두둔의 근거가 '레어템'이라는 것.
요즘 세상에 예술가는 희귀한 아이템이라는 주장이죠.
장난스럽다는 형용사를 썼지만, 어쩌면 그 안에 진실이 있을 겁니다.
예술가의 매력 혹은 존재 의미는, '자신만의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다들 포장된 사진을 올리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허약한 존재.
스스로의 단단함은 찾기 어렵고, 주변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죠.
남들 하는 거 따라서 하고, 남들 사는 대로 살고 말입니다.
2년 전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그의 고향 집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은 떼거리로 하는 게 아니라 혼자 하는 거라고 일갈한 뒤 나가노 산골로 귀향해 50년 넘게 살고 있는 기인(奇人).
삶의 목적을 물었을 때 그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립'이라고 답하더군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가족, 직장, 국가로부터의 자립.
자유는 거저 얻을 수 없으며, 목적 없이 사는 자는 목적을 위해 사는 자에게 생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세계관이었죠.
겐지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족, 직장, 나라에 의존하며 살다 보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그러다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엄살이나 피우고.
인간이라면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간단한 목적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는 궁극의 목적."
평범한 우리는, 그래서 예술가를 부러워하고 매혹 당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과거의 종교가 했던 역할을 지금의 예술이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물론 포즈로서의 사이비와 진정한 예술가의 구별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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