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29 윤희영 편집국 편집위원)
두 아이의 엄마가 쓴 솔직하고 진심 어린 공개편지(candid and heartfelt open letter)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go viral).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에 사는 채리티 베스라는 여성이 페이스북에 엄마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lay bare the distress
of motherhood) 성급하게 심판하려 하지(make snap judgments) 말고 좀 더 이해심을 가져 달라고
(be more understanding) 호소한 내용이다.
"어느 엄마가 피곤하다고 말하면(be tired) 말 그대로(as the word itself means) 정말 피곤하다는 얘기입니다.
아들이나 딸을 놓아버리거나(drop her son or daughter) 아이들 존재를 잊고 싶다는(forget their existences) 말이 아닙니다.
엄마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want some time alone) 하면 진짜 잠시나마 홀로 있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엄마 된 것이 후회된다거나(be sorry to be a mother) 인생에 실수(a mistake in her life)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엄마가 일 처리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need help to get things done) 말할 때는 실제로 도움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할 능력이 없다고(be incapable) 투정하는 게 아닙니다. 저녁식사로 국수를 만들었다고 해서(make noodles for dinner)
아이들에게 일주일 내내 국수만 먹이는 건 아닙니다. 어느 엄마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안이 엉망인(be disorganized) 모습을
봤다고 그 집이 늘 엉망진창일(be always in a mess) 것이라고 수군대선 안 됩니다.
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외출하고 싶다고(would love to go out with her friends) 말할 때는 그냥 그리 해보고 싶다는 겁니다.
엄마가 아닌 독신 상태로 돌아가겠다는(go back to be single) 것도, 책임감을 벗어나고 싶다는
(be eager to rid herself of her responsibility)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소리 지르는 걸 들었다고(listen to a mother screaming) 괴성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아마도 정상적인 목소리로 300번은 얘기했을(speak 300 times with normal voice tone) 겁니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on the edge of madness) 신경과민인 엄마를 봤을(see a nervous mother) 때 광기라고
손가락질하면 안 됩니다.
전체적인 전후 사정(whole context)과 전반적인 상황(whole situation)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를 심판한답시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서는(invent untruths to judge someone) 안 됩니다.
엄마는 매일 언제나(every day, at all times) 자식의 인생을 살아주느라 자기 자신의 삶은 포기하는(give up her own life t
o live the life of her offspring)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엄마만큼 많이 포기하고 많이 줄 수 있는(be able to give up and donate as much as a mother)
인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심판이 아니라 이해받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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