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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신은 천국을, 인간은 지옥을 만들었다"

바람아님 2019. 2. 3. 18:22

(조선일보 2019.02.02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신은 천국을, 인간은 지옥을 만들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어수웅·주말뉴스부장


'코스모스'의 세계를 가정합니다. 천칭자리에 '경희궁 337'이라는 별이 있다고 칩시다.

그 별을 볼 때 우리는 사실 20년 전의 경희궁을 보는 겁니다.

지구에서 20광년 떨어진 별이니까요. 반대로 경희궁 337에서 우리를 볼 때도 마찬가지.

성능 좋은 망원경이라면, 그는 광화문 광장을 빠르게 걷고 있는 젊은 기자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20년 전, 원기 왕성하던 청춘 시절을.


이제 가정 하나 더. 빛보다 빠른 속도의 우주선을 만들어, 여기에 이 성능 좋은 망원경을 설치합니다.

방향은 지구 쪽으로. 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역순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낭만적 설정으로 시작하는 과학소설(SF)이 중국 출신 미국 작가 켄 리우(43)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입니다.

하버드대 영문과 출신의 리우는 한 작품으로 네뷸러상, 휴고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전대미문의 작가.

이번에 국내 번역된 '종이동물원'(황금가지 刊)으로 그 기록을 세웠습니다.

'역사에…'는 이 책에 실린 중편이죠. 낭만적으로 이륙했던 소설은 이제 예각 비행을 시작합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비밀을 푼 주인공들은 행선지를 1940년대 만주로 설정하죠.

구체적으로는 일본 731부대.

'신은 천국을 만들었고, 인간은 지옥을 만들었다'는 표현으로 악명 높은,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를 마루타 삼아

생체실험을 자행한 부대 말이죠. 731부대의 만행을 비판하려면 별도의 지면이 필요할 겁니다.

따라서 이 제한된 자리의 앵글은 조금 다릅니다. 말하자면 역지사지의 성찰이랄까요.

소설 속 과거 시간여행을 두고 현재의 중국과 일본은 격렬하게 서로를 비방합니다.

당시의 하얼빈은 일본 제국이 세운 만주국 치하였으니 지금의 중국은 관여하지 말라는 일본 주장과,

일제 시절 잔학행위 보상하라 요구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 핑계 대면서 우리는 모른다고 변명하던 일본이,

지금은 무슨 자격으로 끼어들려 하느냐는 중국의 반격이죠.


우리는 당사자일 때 흥분합니다. 제3자일 때 조금 더 차분해지죠.

중국과 일본의 과거사 분쟁으로 오늘의 어우야담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 살피고, 천천히 우리 문제도 되짚어보기.

커버스토리로 DJ 정권 초대 비서실장인 김중권 인터뷰를 읽어봐주시기를.

설 연휴로 9일자를 쉬고 16일자에 다시 뵙겠습니다.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소설
원제 National Security Intelligence
저자: 켄 리우/ 장성주/ 황금가지/ 2018/ 568 p
843.6-ㄹ948ㅈ / [정독]어문학족보실(새로들어온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