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2019.02.23 00:20
추상화는 정치·사회와 담쌓은 예술일 것 같다. 그러나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상설전에는 ‘추상과 사회’ 섹션도 있다. 100년 전에는 추상화를 그리는 것 자체가 구시대로부터의 결별 및 국가주의를 벗어난 세계주의를 선언하는 정치적 제스처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은 넓은 의미의 정치와 늘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우리가 몽환적이라고만 생각하는 마르크 샤갈도 정치적 변화에 예리하게 반응했고 그에 따른 인생 굴곡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그의 라이벌이자 추상미술의 중요한 선구자로서, 마침 오늘이 탄생일인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가 반드시 등장한다. 배경은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직후였다. 러시아의 유대인으로서 샤갈은 진심으로 혁명을 환호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유대인이 처음으로 동등한 시민권을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또 혁명 정부가 부르주아 계급의 사유물이 아닌 만인을 위한 예술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샤갈은 기뻐하며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에 미술학교를 열었다. 거기에 초빙교수로 온 사람이 바로 말레비치였다.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던가. 말레비치는 학생들에게 샤갈보다 인기가 많았다. 말레비치는 자신의 심플한 기하학적 추상화 ‘쉬프레마티즘’이 유럽 부르주아 미술 전통과 단절된 것이며 만국언어와 같으므로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자부했으며, 학생들은 이에 공감했다. 또 말레비치는 연인과 소가 날아다니는 샤갈의 그림이 혁명정신이 결여돼 있고 감상적이며 부르주아적이라고 공격했는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샤갈은 정부 지원 순위에서 혁명적 정치성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하위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결국 샤갈은 1922년 고국을 떠났다. “혁명이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존중을 유지했다면 위대한 것이 되었을 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그런데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말레비치도 몰리기 시작했다. 추상화 등 전위예술은 무조건 부르주아 취향이라며 배척됐고, 북한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리얼리즘 그림들만 권장됐다. 러시아 미술은 급속히 후퇴했다. 말레비치는 작품을 압수당하고 한동안 구속도 됐다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샤갈과 말레비치의 이야기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위대한 예술은 대부분 사회정치적 변화에 깨어있지만, 정치가 예술에 간섭을 시작하면 예술은 죽는다는 것.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던가. 말레비치는 학생들에게 샤갈보다 인기가 많았다. 말레비치는 자신의 심플한 기하학적 추상화 ‘쉬프레마티즘’이 유럽 부르주아 미술 전통과 단절된 것이며 만국언어와 같으므로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자부했으며, 학생들은 이에 공감했다. 또 말레비치는 연인과 소가 날아다니는 샤갈의 그림이 혁명정신이 결여돼 있고 감상적이며 부르주아적이라고 공격했는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샤갈은 정부 지원 순위에서 혁명적 정치성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하위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결국 샤갈은 1922년 고국을 떠났다. “혁명이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존중을 유지했다면 위대한 것이 되었을 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그런데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말레비치도 몰리기 시작했다. 추상화 등 전위예술은 무조건 부르주아 취향이라며 배척됐고, 북한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리얼리즘 그림들만 권장됐다. 러시아 미술은 급속히 후퇴했다. 말레비치는 작품을 압수당하고 한동안 구속도 됐다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샤갈과 말레비치의 이야기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위대한 예술은 대부분 사회정치적 변화에 깨어있지만, 정치가 예술에 간섭을 시작하면 예술은 죽는다는 것.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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