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新 지록위마

바람아님 2019. 2. 27. 08:17
세계일보 2019.02.26. 00:05

어느 절 마당에 구불구불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노승이 그 나무를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물었다. “누가 저 소나무를 곧게 볼 수 있느냐?” 굽은 소나무를 어떻게 곧게 본단 말인가! 제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조금 후에 다른 제자가 오자 노승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네. 구불구불 구부러져 있군요.” 그의 대답에 노승이 크게 웃었다. “바로 그거야. 굽은 것을 굽었다고 하는 것이 곧게 보는 것이니라.”


노승의 가르침을 거꾸로 읽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이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고용과 소득 지표가 나빠지자 한 민주당 최고위원은 “흔들림 없이 정책을 밀고 가야 하는 확실한 방증”이라고 강변했다. 검찰 수사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청와대가 보인 반응도 마찬가지다. 대변인은 “통상 업무의 일환인 적법한 체크리스트”라는 억지주장을 늘어놓았다.


진실을 호도하는 이런 현상은 ‘인지부조화’의 심리 상태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생각과 실제 일어난 현상이 불일치하면 실제 현상에 맞게 생각을 바꿔 둘을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이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1992년 광신도들의 ‘휴거 소동’이다. 심판의 날에 자기들만 하늘로 올라간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운명의 그날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짓이 탄로 난 후에도 종교는 건재했다. 광신도들은 “우리의 믿음으로 불 심판이 연기됐다”면서 외려 믿음을 강화했다. 굽은 것을 곧다고 우기는 위정자들의 행태가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옛날 진나라 간신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시험해볼 요량으로 어린 황제 앞에 사슴 한 마리를 갖다놓은 뒤 “폐하를 위해 좋은 말을 구했다”고 말했다. 황제가 말이 아니라고 하자 좌중의 신하들에게 “저게 말이냐, 사슴이냐”고 물었다. 조고의 위세에 눌려 모두 말이라고 대답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면 나라는 반드시 위험에 처한다. 강대한 진나라도 사슴이 말로 둔갑한 지 4년 만에 망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는 조고 같은 간신들이 너무 많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