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02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아무튼, 주말] 남자는 항상 예뻐야 한다고?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연기보다 수상 소감과 무대 매너에 더 반했습니다.
올리비아 콜먼(45). 이번 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국 배우죠.
수상작은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호명된 뒤 콜먼이 보여준 3분은 허둥지둥과 갈팡질팡,
그리고 '아무 말 대잔치'의 애교로 압축됩니다.
"오, 이거 정말 압박감 엄청나네요"라는 당황의 일성(一聲)으로 시작하더니,
곧 "정말 신난다, 히히"라며 활짝 웃었죠.
함께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와 레이디 가가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다가 갑자기 가족에게 화제를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보고 있니, 얘들아? 이런 일은 절대 또 안 생긴다고!"
콜먼은 귀여운 여성성의 극치였지만, 수상작인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도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남성을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요.
이 영화의 남성은 심하게 말해 소모품. 주인공은 세 명 모두 여성입니다.
여우주연상 콜먼이 영국 여왕 앤, 레이철 와이즈가 앤 여왕과 사랑·권력을 나누는 귀족 사라,
그리고 2년 전 '라라랜드'로 같은 상을 받았던 에마 스톤이 사라 자리를 탐하는 하녀 애비게일로 출연하죠.
영화는 치정극입니다. 과거의 이 장르 문법이었다면, 여성 주인공은 권력 쥔 남성을 차지하려고 다퉜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권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이 독점합니다.
우아한 사극인 데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탓에 스치듯 지나가지만, 남성 관객을 도발하는 대사가 적지 않죠.
토리당의 당수 할리는 "남자는 항상 예뻐야 해"라고 자조하고, 사라는 남성 할리에게 "마스카라 번졌네. 화장 고치고 와"라고
조롱하며, 심지어 몰락 귀족 출신의 하녀인 애비게일은 자신을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내 새×가 어디 감히 여자를 놀려"라고
고함지르죠. 그동안 여성 차별로 악명 높았던 할리우드에 대한 반격이라고나 할까요.
오늘 자 9면에는 지난 30년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의 남녀 배우 비중이 나옵니다.
물론 압도적인 남성 우위죠. 하지만 최근의 추세는 다릅니다.
작년 할리우드 흥행작 100편 중 여성 단독 주연이거나 공동 주연의 영화 비중은 40%에 도달했다는군요.
자본은 늘 예술보다 눈치가 빠른 법이죠.
콜먼의 수상 소감은 남편에 대한 감사로 끝을 맺었습니다. "25년간이나 나를 지지해 준 당신, 정말 고마워."
20대에게는 이념 갈등이나 빈부 갈등보다 남녀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요즘입니다.
혐오와 차별의 논란 와중에서, 균형 감각을 잊지 않는 3월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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