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30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루트 66'을 따라 달린 적이 있습니다.
1920년대에 개통된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고속도로. 시카고에서 출발해 LA 샌타모니카 해변에
이르기까지, 일리노이·미주리·캔자스·캘리포니아 등 8개 주를 가로지르죠.
신나는 자동차 여행이었지만, 경찰 딱지를 뗀 적도 있습니다.
차 없는 고속도로를 생각 없이 질주하다 미처 과속인 걸 몰랐던 거죠.
영화 담당 황지윤 기자의 지난주 '픽(Pick)'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이었습니다.
꽃 농장 하다 몽땅 말아먹은 90세 노인 얼이 자신보다 더 낡은 포드 트럭을 타고 등장합니다. 노인은 자랑합니다.
미국 본토 50개 주 중 무려 41개 주를 이 녀석과 함께 달렸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없고, 딱지 한 장 뗀 적 없다고.
안전 운전만 고집하는 '90세 할배'. 영화 속 마피아가 이 노인을 마약 운반책으로 '발탁'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스크린과 다르죠. 지난달에도 불행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95세 노인이 서울 청담동 이면도로에서 SUV를 몰다가 사고를 냈죠. 안타깝게도 피해자는 숨졌습니다.
여론은 노인의 운전면허 갱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노인의 인권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모두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그들의 권리를 제한해야 하나.
물론 이 칼럼의 목적은 노인의 사건·사고와 그 해결 방안 강구가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소설가 김훈의 신작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읽다가 시선을 멈춘 대목이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작가 동창들의 연말 송년회 풍경. 국수공장을 운영하다 은퇴한 친구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아이들 다 커서 제 밥벌이하니까 돈 달라 하지 않고, 집에도 더 이상 돈 벌어다주지 않아도 되니까 이것이
늙음의 복 아니겠느냐고. 종신형 받은 죄수가 만기 출소한 느낌이라나요.
이제는 가장의 의미와 역할도 달라진 시대입니다.
선배들의 세대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처자식 건사라고 자처했었죠.
가부장의 공과 과를 나열하기에 이 지면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운전에만 한정하자면 '만기 출소'를 제안드리고 싶네요.
물론 개인별로 사정은 다를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의 교통사고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독려하는 거라는군요. 선배들의 건강을 위해서나 후배들의 안전을 위해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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