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하노이 회담 결렬 교훈 두 가지
적당한 딜과 트럼프 설득 기대
김정은 誤判 답습하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10일 워싱턴으로 향했다. 취임 후 7번째 만남이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정체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특히 북한 비핵화의 물꼬를 다시 터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균열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미 간에 외교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 공조를 이뤄낼지, 이를 바탕으로 완전한 비핵화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국내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과 교훈을 차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확실한 결심을 하지 않은 채 적당하게 딜(deal)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안이한 생각으로 회담에 임했다는 점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1월 31일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우리는 선택을 했다. 그러니 북한도 선택을 하라”고 촉구했는데, 북한은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딜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했다는 후일담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젠 문 대통령도 어정쩡한 중재자 입장, 특히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서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둘째,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김 위원장은 착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개인기에 의존해 외교·안보 사안을 처리하는 데다 김 위원장에 대해서도 “사랑에 빠졌다”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추켜세운 것에 대한 과신이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잘 구슬리면 원하는 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미국 시스템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뿐 아니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딜은 강력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의 오판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영변 + α’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문 정부는 겉으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해왔지만, 실제로는 적당한 선에서 북한이 일부만 폐기해도 눈감고 넘어갈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가 워싱턴에 남아 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미국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와 범위가 분명해졌고 더 이상 영변만으로는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알파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한·미 간 이견이 있는 만큼 양 정상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영변이 북한 전체 핵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한국은 그 비중을 상대적으로 더 높이 평가했다. 영변 시설만 해체해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해 대북 제재 해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비해 미국은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런 입장 차이를 좁혀야 한다. 영변의 수치를 어떻게 매기느냐에 따라 알파의 수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스탠퍼드대 동료이기도 한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는 영변의 의미를 비교적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에서도 이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미 정보 당국은 그 비중을 작게 본다.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어렵지만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할 때이다. 분명한 입장 없이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계속하려 하다가는 미국과 북한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한·미 동맹 균열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미 공조에 문제가 없다는 외교적인 수사만 되풀이해선 안 되고, 북한 비핵화의 의미와 목표가 무엇인지, 또 이를 이루기 위해 양국이 어떻게 공조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표명이 있어야 한다. 자칫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가 또다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는 이해하지만, 어차피 피해갈 수는 없는 과정이다.
회담 후 문 대통령은 한·미 간에 합의된 비핵화 안을 갖고 김 위원장을 설득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만이 김 위원장이 꿈꾸는 북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권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제재 해제는 물론 ‘북한판 마셜 플랜’을 만드는 데 한국이 앞장서겠다고 천명할 수도 있다. 이번 방미가 하노이의 재판이 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어려워지고 동맹 균열은 가속화한다. 이런 비장한 심정으로 정상회담에 임하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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