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6.21. 03:17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박정희 '한국적 민주주의'와 닮아
민주주의 위기에 독재와 포퓰리즘 대응하는 건 재앙의 길
'6월 홍콩'은 세계사의 변곡점이다. 인구 700만인 도시에서 200만 시민의 평화시위는 압도적이다. 홍콩 시민들의 '피플 파워'가 '범죄인 송환법'에서 중국 정부의 후퇴를 강제했다. 한국 현대사가 '5월 광주'를 호명한 것처럼 중국사도 '6월 홍콩'을 끊임없이 불러낼 것이다. 민심의 바다를 이룬 홍콩 거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중국어로 합창되고 '촛불'이 거명된 것도 경이롭다. 민주주의 한류(韓流)의 보편적 호소력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공론 영역의 호응은 크지 않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이건만 중국에는 저자세 일변도다. 홍콩 시민들에게 연대를 표방한 정당과 시민단체도 드물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앞세워 목소리를 높여 온 한국 진보의 홍콩 사태에 대한 침묵은 많은 걸 말해 준다.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모습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자유와 인신(人身) 보호 같은 근본 가치가 상대화될 순 없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유신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닮았다. 박정희를 맹렬히 혐오하는 이들이 중국의 일당독재엔 온정적인 것은 자가당착이다.
'6월 홍콩'은 제국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의 향배가 함께 걸려 있다. 홍콩 사태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최대의 내부 도전이다. 중국 공산당에 민주주의와 인권, 독립된 사법부와 자유언론은 부패한 '서양적 가치'에 불과하다.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엔 민주주의를 위한 공간은 없다. 홍콩 시민들은 이 공백에 저항해 승리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50년간 시행을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중국이 무너뜨리는 상황에서 홍콩 사태의 파장은 1989년 천안문 사태보다 훨씬 강력하다.
중국의 G1 등극론도 제국 중국의 약점을 감추진 못한다. 미국에 비해 군사력과 경제력 열세에다 국가에너지 안보가 결정적으로 취약하다. 일대일로 팽창정책이 제국 경영의 화근으로 돌아오는 상황은 은밀히 힘을 키우라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옳았음을 보여 준다. 내부 모순도 심각하다. 소수민족 문제에다 개혁·개방의 열매를 독점한 사회주의 권귀(權貴) 집단의 총체적 부정부패와 천문학적 양극화가 폭발 직전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이 체제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무너트린 게 치명적이다. 중국 사회주의의 자기 수정 능력이 사라지면서 사회정치적 모순과 갈등이 임계점을 넘나든다. 이는 미·중 다툼의 한가운데 서 있는 한국의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
미·중은 홍콩·대만과 북한을 서로를 겨눈 전략 자산으로 활용한다. 홍콩에서 내상(內傷)을 입은 시 주석이 전격 방북한 이유이다. 미·중 패권 다툼에서 전략 핵국가 간 전면전은 불가능하므로 초(超)장기 경제 전쟁이 불가피하다. 갈수록 중국이 불리한 싸움이다. 미국이 평화적 방법으로 중국을 약화시키는 화평연변(和平演變)을 구사할수록 중국으로서는 북핵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다. 게다가 북한은 중국의 유일무이한 군사동맹국이다. 합종연횡과 세력 균형의 근본 이치를 무시하고 남북 관계에 모든 것을 거는 문재인 정부의 자폐적 행보는 국가 전략 부재와 역사에 대한 무지를 폭로한다.
'6월 홍콩'이 드러낸 중국식 일국양제의 치명적 균열은 한반도 미래에도 암시하는 바 크다. 만약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0년 집권'으로 한반도식 일국양제(1국가 2체제 통일)를 실현하려 한다면 참혹한 국가 실패가 예정되어 있음을 홍콩 사태가 웅변한다. 홍콩 기본법이 규정한 고도의 일국양제가 본토의 역동적 사회 변화와 맞물려 제국의 변화를 추동할 때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보석(寶石)에서 우환거리로 전락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적대적인 황혼의 제국이 문명의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는 건 무망한 일이다.
세계 민주주의가 총체적 위기에 빠질수록 '6월 홍콩'은 찬란히 빛난다. '5월 광주'가 한국 민주주의를 비춘 것 같이 '6월 홍콩'도 중국을 비춘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독재나 포퓰리즘으로 대응하는 건 재앙의 길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 나은 민주주의로만 극복된다. 중국 정부는 홍콩 사태를 1989년 천안문처럼 잔혹하게 진압할 수 없다. 전(全) 세계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피플 파워를 수용해야 중국의 진정한 대국굴기가 이루어진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가치를 거부하는 한,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Pax Sinica)와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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